[2018 한대신문 문예상 시 부문 우수상] 멀리 간 편지 -딜레탕트
[2018 한대신문 문예상 시 부문 우수상] 멀리 간 편지 -딜레탕트
  • 정윤수<경금대 경제금융학부 15> 씨
  • 승인 2018.12.03
  • 호수 1487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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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밀조주 따위의 업자처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유통하는 물품들에 끊임없이 손을 댔지

본래 편지를 크기와 도착지마다 분류하여 주인을 찾아주는 일만이 마땅했으나 나는 읽기 시작했고,
쓰기 시작했네, 다른 사람들에게 도착해야 했던 약들을 멋대로 물에 타 마셔 취하기 시작했고, 손톱을 자주 깎았네,
보이기 시작했네, 어떤 종류의 징벌들이

5월의 풋살구처럼 파란 볼이, 복숭아처럼 무른 손목이, 감촉이 궁금하여 눌러볼 만한 커피색 머릿결이, 자주 축복 받는 올리브 입 모양이 모두, 캄캄한 가운데 뚜렷했네, 입이 시고 가슴이 떫어 편지들을 뒤로 난 창문 밖으로 내던졌네, 골목의 더러운 취기 위로 마차가 자주 지나다녔고 사람들은 많이들 하이힐을 신고 걸었네

모든 것이 전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도 않네, 눈보라는 자제를 모르고 하늘에 인쇄물들을 덧칠했지, 손톱은 자주 깎을 이유가 사라지자마자 8월처럼 자랐네, 겨울이 지났는데 그치지 않아 누구의 손도 잡을 수 없었네

무엇 하나 내 의지로 끝내지 못했고 열심히 하지도 않았네, 이제 왕래가 끊기고 우체부도 오지 않는 우정국, 아니 인쇄소에 앉아 나는 딜레마까지 잃은 죄수처럼 몰래 아마레토[1]를 마시네, 어제는 뜰에 복숭아나무를 심었고 더는 누구도 알고 싶지 않았지, 오늘 밤엔 도착하지 못한 겨울도 청색증에 걸리겠네


[1] 살구와 아몬드의 씨 등으로 만들어진 달콤하고 쌉쌀한 맛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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