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비바람 견딘 문화유산, 기후변화에 무너져
수천 년 비바람 견딘 문화유산, 기후변화에 무너져
  • 강은영 기자
  • 승인 2023.09.18
  • 호수 1571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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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재난으로 위협받는 문화유산
이상 기후로 우리 문화유산 보존에 경종이 울렸다. 기상청에서 발간한 ‘우리나라 109년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12년부터 2020년까지 연 평균기온이 10년간 0.2℃씩 상승한 것이다. 지속되는 기온 상승으로 기후 재난의 빈도수와 규모가 커지고 있다. 100년에 한 번꼴로 일어나는 이상 기후 현상이 일상화되면서 우리나라 문화유산 피해 규모가 늘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내 문화유산 피해는 지난 2017년 22건에서 지난해 154건으로 5년 만에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최근 전례 없는 폭우로 다수의 국가 문화유산이 침수되고 무너졌다. 문화재청이 발표한 ‘2023년 장마철 국가유산 피해·조치 현황자료’에 따르면 올해 폭우로 인해 총 78개의 국가유산이 피해를 입었다. 지난 7월 충남에선 이틀 동안 425㎜의 폭우가 쏟아져 공주 공산성은 누각 지붕만 남기고 물에 잠겼고, 부여 왕릉원 고분군 2 호 무덤은 일부 유실됐다. 다. 안신원<국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집중 호우에 취약한 문화유산은 성곽과 고분군”이라며 “호우와 바람으로 석축과 담장이 붕괴하고, 무덤 봉분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난 7월 홍주 읍성 성곽이 집중 호우로 인해 무너진 모습이다.
▲ 지난 7월 홍주 읍성 성곽이 집중 호우로 인해 무너진 모습이다.

장기간 이어지는 불볕더위도 문화유산에 피해를 끼칠 수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폭염 일수가 4일이었던 2019년에 비해 올해는 19일이나 이어졌다. 조상순 학예연구관은 “야외 철제 유산은 장시간 고온 노출로 *열화 현상이 가속돼 변형이 우려된다”며 “석탑 상부에 있는 철로 만들어진 찰주나 철비 등과 같은 부재는 변형률이 높다”고 말했다. 폭염으로 인해 문화유산에 균열 및 들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단 의미다.

또, 평균기온 상승으로 인한 흰개미 확산으로 목재류 문화유산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흰개미는 온도 변화에 민감한데 연일 더운 날씨가 지속되면서 흰개미의 번식과 활동량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목조 문화유산의 천적이라 불리는 흰개미는 나무를 안쪽부터 갉아 먹기 때문에 큰 피해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훼손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전남 진도의 명승 운림산방은 흰개미가 기둥과 장판을 갉아 먹어 건물 전체를 보수 해야 했다. 서울 경복궁의 사정전 행각 기둥도 흰개미에게 피해를 입었다. 조 학예연구관은 “흰개미는 봄철에 번식하는데 최근엔 그 시기가 앞당겨져 활동 기간이 길어졌다”며 “결과적으로 흰개미 군체의 활동량이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온 변화에 따른 흰개미 활성 변화 연구’에 따르면, 흰개미 활동량이 늘면서 개체 하나가 연간 먹어 치우는 목재 양도 6.958mg에 서 8.107mg으로 12.7% 증가했다.

기존 대응책으로 문화유산 지키기엔 역부족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문화유산 피해 대응책은 아직 미흡하다. 조 학예연구관은 “여태까진 기후변화가 문화유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지 않고 ‘풍수해’ 로 인한 피해로 인식돼 왔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문화유산 훼손이 개별적인 자연 재난 사례로 분류돼 근본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문화유산 보존 전담 조직이 정비되지 않아 즉각적인 대처가 어렵단 것도 문제다. 이는 오랫동안 지적 됐지만, 문화재청과 정부는 큰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 지난 2019년 기초지자체 226 개 중 문화유산 전담 부서가 있는 곳은 12 개뿐이었다(본지 1501호 5면). 그로부터 4년이 지났지만 문화유산 전담 부서가 있는 지자체는 겨우 4개 늘어났다. 상위 기관인 문화재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류호정<정의당> 의원은 “△문화유산 분야 기후 위기 대응의 국제협력 및 교육 강화 △기후 위기 대응 추진체계 구축 △민관 거버넌스 활성화를 통한 대응 생태계 구축이 필요한데 현재 문화재청 조직체계로는 어렵다” 며 “기후 위기에 선제 대응할 수 있는 문화 유산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전담 부서와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유산기본법, 문화유산 지키기 위한 기반 마련되나
올해 5월 국회는 변화한 기후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유산기본법」을 새롭게 공포했다. 이는 재산적 가치를 탈피하고 공동체 유산으로서 가치에 집중해 국가유산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법안으로, 지난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과 달리 기후변화 대응에 관련 조항이 추가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에 류 의원은 “「국가 유산기본법」은 기후변화 대응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적절하고 필요한 입법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은 국가유산 보존을 위한 사전 조사 의무를 담고 있다. 제22조 1항은 기후 변화가 국가유산에 미치는 영향과 국가유산의 취약성을 국가와 지자체가 조사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조 학예연구관은 “△국가유산 안전상황실 설치 △국가유산 풍수해 예방 안전관리 전략 수립 △분야별 방재시설 구축 기준 마련 등의 제도적 정비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기후변화로 인한 국가유산 피해 저감 방안을 의무로 규정했다. 2항에서는 1항을 바탕으로 기후변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고 명시했다. 조 학예연구관은 “이번 제정안은 기후변화 대응 연구 및 정책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가 돼 기후변화에 대한 준비가 철저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겨레의 전통과 정신이 깃든 문화유산이 기후변화로 인해 훼손과 소실의 위기에 처했다.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열화 현상: 물질이 고온의 상태에서 재료의 물성이 저하되는 현상을 말한다.


도움: 류호정 의원
조상순 학예연구관
사진 제공: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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