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된 한대신문 코너 속으로
역사가 된 한대신문 코너 속으로
  • 우지훈 기자, 노승희 기자
  • 승인 2019.09.23
  • 호수 1500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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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호를 맞이한 한대신문은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코너를 기획·발간해왔다. '거리의 리포터', '장산곶매' 등 오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코너도 있지만, 몇몇 코너는 이제 추억이 됐다. △한대신문 학술상 △혜윰 △세뇨르·세뇨리따 △역지사史지 등 이름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한대신문 역사 속 코너들을 알아보자.

한대신문 문예상, 그 원조는 '한대신문 학술상'
매년 한대신문에서는 '한대신문 문예상'을 열어 학생들로부터 여러 문예 작품을 공모하고 있다. 한대신문 문예상은 1967년 발간된 193호에서 처음 열렸는데 당시엔 ‘한대신문 학술상’이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문예 작품만 실리는 현재와 달리 다양한 분야의 공모를 받아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대회는 문예 부문과 논문 부문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 대회는 총 541편이나 공모되며 대성황을 이뤘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시가 243편, 단편소설이 87편이었고, 논문은 211편이었다. 
첫 대회는 성황리에 개최됐지만 심사위원 교수진과 만평은 혹독한 비판을 쏟아냈다. 심사를 맡은 교수들은 학생들의 미숙함을 지적하는가 하면, 같은 면에 실린 만평은 개구리를 찾아볼 수 없는 올챙이들만의 대회라고 평가하고 있다. 첫 개최로 많은 관심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에 관한 지침이 마련되지 않았던 때라 미숙하게 진행됐으리라 짐작된다. 심사평 중에는 초창기 대회에서 시 부문을 심사했던 당시 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박목월 시인의 글이 특히 이목을 끈다. 

이제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한대신문 문예상은 그 위상을 나날이 높여가고 있다. 여러 저술가의 자취가 자랑거리로 남아있는데, △노동효 여행작가 △박건한 시인 △송경원<씨네21> 기자 등이 그 사례다. 이들은 우리 문예상에서 수상한 뒤에도 여전히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11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대신문 문예상'이 개최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대신문 문예상의 52번째 주인공은 누가 될까. 


사상가를 책 밖으로 끌어오다, '혜윰'
'혜윰'은 '생각'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1290호부터 한대신문은 혜윰 코너를 통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사상가들의 생각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사평론을 한 바 있다. 
기자는 사상가들의 주장을 간략히 정리하고, 학내 사안은 물론 각종 사회 문제에 관해 그 사상가가 어떻게 생각했을지 1인칭 시점으로 설명한다. 사상가들은 헤윰을 통해 우리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넨다.

로스쿨 도입으로 시끌벅적했던 2009년, 기사는 교육기관이 사회적 약자에게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요한 페스탈로치의 「란하르트와 게르트루트」 속 교육관을 바탕으로 로스쿨과 변호사 시험 제도에 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와 국가정보원 감청 의혹이 제기됐을 때는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인용하며 감시받는 사회는 판옵티콘 감옥과 다를 바 없다는 강도 높은 비판을 하기도 한다. 또한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바탕으로 이성에 의한 토론이 가능한 공론장으로서 인터넷 언론의 중요성을 피력하기도 한다. 
이전까지 한대신문이 시도했던 코너 중에는 혜윰과 유사한 코너가 다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교수 필진을 중심으로 여러 사상에 관한 단순 소개에 그쳤다. 혜윰은 이런 단편적인 지식 나열에서 벗어나 기자가 직접 사상을 학습해 학생사회와 가까운 이슈에 적용까지 한 코너다.

학생들은 매주 다른 사상가들이 소개되는 한대신문을 펼치며 사고의 깊이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비판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라는 말을 상기해보면, 비판의식을 촉구하는 여러 사상가와의 만남은 언제나 독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사해준다. 

우지훈 기자 1jihoonwoo@hanyang.ac.kr 

그때 그 시절 세뇨르와 세뇨리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초창기 한대신문은 독자들의 원고를 모아 발간한 코너가 있었다. 바로 '세뇨르·세뇨리따' 코너다. 매주 남학생과 여학생 1명씩 지원자를 모집했고 그들은 각각 코너 속 '세뇨르(스페인어의 남성 지칭어)', '세뇨리따(스페인어의 여성 지칭어)'가 된다. 매주 이들은 주어진 주제에 관해 원고지 1장 분량의 글을 쓴다. △공강 시간 △지하철 △하숙방 △4월 등 일상과 관련된 주제가 대부분이다.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낸 글을 투고 받으며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한대신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오후 강의'를 주제로 한 글에서 세뇨르는 "온몸이 나른해지며 본격적인 공상의 경지에 달하면 아무리 열변을 토하는 교수님의 강의일지라도 편안하고 안락한 꿈에의 초대로 이끌어주는 세레나데가 되는 것을 피할 길은 없게 된다"며 강의 시간의 노곤함에 관해 재치 있게 표현하고 있다. '개강'에 관해 세뇨리따는 "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새 학기를 맞이하고 첫 강의를 맞는 때마다 내가 긴장과 기대를 갖는 이유는 새로운 것, 처음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라며 지금과 다를 바 없는 개강 후 첫 강의의 설렘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다방 △양장점 △콤팍트 등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은 시대 차이를 실감하게 한다.

세뇨르와 세뇨리따의 글은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며 그 시절을 지낸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과거 한대신문의 한 페이지가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하나의 증거물이 됐다는 것이다. 한대신문 1500호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매체가 되길 기대해본다.


'역지사史지', 입장을 바꿔 역사를 생각하다
'역지사史지'는 신문 발간 주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개한다. 2011년 6월 7일, 1345호 발간 당시를 예로 들자면 1944년 6월 6일 있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관해 설명하는 형식의 코너다.

2011년 9월 5일에 발간된 1347호에서는 애국가의 탄생기를 소개하고 있다. 기사는 윤치호가 국가를 작곡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난 뒤, 어떻게 애국가의 악상을 생각해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기사에따르면 조선의 정서를 담기 위해 비 오는 날의 천둥소리까지 살필 만큼 조선을 관찰하고 연구한 그는 1902년 9월 7일, 고종 황제 탄신일에 대한제국애국가를 연주해 보일 수 있었다. 이처럼 기사는 우리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부분에 관해 이야기해주듯 설명하며 독자로 하여금 지나간 시간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세균 쫓는 추격자, 코흐' 기사에서는 결핵균을 찾아낸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를 소개하고 있다. 기자는 “나는 결핵균이다. 9천만 년 동안이나 숨어있었던 나를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찾아냈다”며 세균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렇듯 생소한 내용도 흥미롭게 전달하려는 의도 덕분인지 독자들은 기사를 읽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신문 발간 주와 같은 날짜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역사가 그저 과거에 멈춘 것이 아니라 현재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준다. 글을 읽다 보면 역사적 사건을 돌아보고 현재를 비춰보며 다양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 '역지사史지'는 역사를 잊고 사는 우리에게 과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호흡법을 일러주고 있다.

노승희 기자 seunghi0703@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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