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짬’, 너를 어찌하면 좋을까
[장산곶매] ‘짬’, 너를 어찌하면 좋을까
  • 김종훈 편집국장
  • 승인 2019.01.02
  • 호수 1488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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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훈편집국장
▲ 김종훈<편집국장>

‘짬’은 군대에서 먹는 ‘짬밥’을 줄여서 부르는 말로, 이것을 많이 먹었다는 것은 군대에서 보낸 시간이 그만큼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의미가 확장돼 군대가 아니더라도 짬이 있다는 것은 어떤 집단에서 오래 있었던 사람이 그만큼 연륜이 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언론계는 군대식 위계질서가 만연한 것으로 악명 높다. 군대에서 쓰는 ‘다나까’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는 언론사가 적지 않고, 수습기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명 ‘사스마와리’는 여전하다. 사스마와리란 경찰서, 법원, 검찰 등을 돌아다니며 기삿거리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사마다 다르지만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반년 남짓 이뤄지는 교육 동안 수습기자는 4시간 이하 수면을 하며 주 6일 근무에 시달린다. 요즘 이야기 하는 ‘워라밸’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학보사도 기본적으로 ‘짬’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갓 들어온 기자는 이름만으로도 어리숙해 보이는 ‘수습기자’가 되고, 학보사에서 한 학기 수습 기간을 거쳐 ‘정기자’가 된다. 그 위로는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만큼 많은 기사를 써 내려 간 각 부서 부장과 편집국장이 있다. 

학보사가 ‘짬’을 기반으로 한 기수제로 운영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수제가 신문제작이라는 학보사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학보사 경력이 길수록 내부 사정과 기사와 취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학보사가 대학 내 대부분의 집단에서 사라진 기수제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집단 중 하나인 이유다.

필자도 1년간 학보사 생활을 하며 ‘짬’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짧게는 한 학기에서 1년 이상 학보사 일을 더 경험한 선배 기자들은 능숙하고 빠릿빠릿했다. 기사 주제 선정에 있어서나 뜻밖의 일이 생겼을 때 대처능력 또한 필자보다 뛰어났다. 실제로 선배 기자들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우려했던 기사가 있었다. 필자는 우려에도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취재를 시작하자 여러 문제가 생겨 결국 급하게 다른 소재를 찾아 기사를 겨우 작성했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그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짬’ 중심의 문화는 효율적이지만 부작용도 있다. 경험이 많은 부장과 편집국장 역시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문화에서는 선배 기자가 실수를 해도 후배 기자가 그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그냥 넘어가 버리면 오판은 그대로 신문에 나타난다. 신문제작이라는 목적 자체는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질 낮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조직에 오래 몸담은 사람일수록 그 조직에 대한 이해도나 업무능력은 좋아지지만, 그만큼 그 조직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무뎌지고 이대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필자도 처음 수습기자가 돼 학보사에 들어왔을 땐 마음에 안 드는 점이나 부당하다고 느꼈던 점들이 분명 있었을 텐데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편집국장으로서 새 학기를 앞둔 지금 필자는 ‘짬’에 대한 고민이 많다. 어떻게 ‘짬’ 중심의 문화가 주는 효율성을 취하면서 부작용을 없앨 수 있을까. 결국 좋은 신문,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신문사 구성원들이 다른 걱정이나 불편함 없이 기사 작성 과정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 자리를 거쳐 간 일흔아홉 명의 기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 고민을 통해 해결된 문제점도 있을 테고 그렇지 못한 문제점들은 필자와 앞으로 편집국장이 될 기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물론 필자 혼자 그 모든 숙제를 해결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멎지 않는다면 분명 나은 학보사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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