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있을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있을까?
  • 한대신문
  • 승인 2017.05.13
  • 호수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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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의 성공한 쿠데타론을 격파하는 법 논리

위만, 왕건, 이성계, 나폴레옹...’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을 장악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왕조 혹은 국가체제를 수립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의 쿠데타는 성공했기에 역사 속에서 처벌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처벌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그 법적 논리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1993년 2월, 김영삼 문민정권이 집권하면서 오랜 기간 이어져온 군사정권은 종식됐다. 시민들은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5.18 민주화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신군부 세력을 처벌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문민정부는 “오늘에 다시 보복적인 한풀이를 하기보다는 우리 다 같이 잊지는 말되 과감하게 용서하고 새롭게 화해하자”며 “책임자 처벌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훗날의 역사에 맡기자”고 했다. 즉, 신군부 세력을 응징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이는 정치적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문민정부는 *3당 합당에 의해 집권했던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실망한 시민들은 ‘5⋅18진상규명과 광주항쟁정신계승국민위원회’를 구심점으로 자발적인 진상규명 운동을 시작했다. 그 결과 1994년 5월 13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등 5.18사건 관련자 35명을 내란 등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그러나 1995년 7월 18일, 서울지검은 신군부 세력의 내란 혐의에 대해 새로운 정권과 헌법질서를 창출한 행위라며 ‘공소권 없음’을 발표해 법원에 재판 자체를 청구하지 않았다.
 

▲ 찰의 결정에 반발한 대학 교수들이 기소를 촉구하고 있다.

 

*3당 합당: 5공 세력이 주축인 민정당, 김영삼 중심의 민주당, 김종필의 공화당이 합당하여 민자당이 출범한 사건

檢,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다
이 같은 결정은 크게 두 가지 근거를 기반으로 한다. 첫째,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성공한 쿠데타론’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란죄의 목적을 알아야한다. 내란죄는 현존하는 국가의 질서에 대항해 변혁하려는 행위로부터 헌법적 질서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검찰의 주장에 따르면 만약 내란에 의해 국가 조직이 변경되고 지배권력이 교체되는 등 변혁에 성공한 경우, 기존의 법질서는 새로운 법질서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질서를 지키기 위한 내란죄로 새로운 질서체제의 주체를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즉, 내란이 미수의 단계를 떠나 완전히 목적을 달성한 때에는 이미 새로운 법질서가 확립돼 기존의 질서는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사법심사배제론’이다. 삼권분립을 기본으로 하는 통치구조는 입법·행정·사법부가 독립성을 유지하고, 실효성있는 견제를 보장하기 위해 각자 권한의 본질적 부분은 간섭하지 못하도록 구성된다. 행정부의 영역인 ‘고도의 정치성을 띤 통치행위’를 사법부가 판단하는 것이 금지된다. 따라서 정치권력이 교체되는 쿠데타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사법부는 이에 대해 심판할 수 없다는 논지다. 검찰은 “정치적 사건에 대하여 사법기관이 그 위법 여부를 판단할 경우 중대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거대한 반발을 일으켰다. 시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전국적으로 재수사 및 기소를 촉구하는 서명운동과 가두시위를 벌였다. 학계에서는 성공한 쿠데타라는 이유로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행위도 처벌할 수 없나’라는 반론이 나왔다.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숨겨둔 비자금이 밝혀지며 반발이 더욱 거세지자 검찰은 국민적 여론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를 발족, 재수사를 실시한 끝에 신군부 세력은 군사 반란 및 내란 혐의로 법원에 기소됐다.  

高法, 자연법 개념을 제시하고 혁명과 쿠데타를 구분하다
법원의 입장은 검찰과 달랐다. ‘자연법적 정당성’이라는 법철학적 논거를 통해 신군부와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고등법원은 헌법의 배후 또는 상위에 있는 규범으로서 자연법 개념을 제시하며 이를 ‘정의와 선, 평화의 원리를 내용으로 하는 보편적 법원칙’이라고 정의했다. 판결에 따르면 국가에서 이뤄지는 통치행위 혹은 법률은 헌법에 부합하면 합법성을 얻지만 그러한 합법성이 곧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의 상위규범인 자연법에 부합하는 헌법과 법률만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법원은 신군부 세력이 적법한 절차에 의해 헌법을 개정하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통치했다고 하더라도 정당성이 결여돼 있다고 봤다.
또한 고등법원은 혁명과 쿠데타를 구분했다. 혁명은 ‘기존의 법질서가 부당한 것이라는 인식이 사회에 만연해져 마침내 힘에 의해 이를 극복하려는 투쟁’이다. 혁명 속 변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은 광범위하고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현존하는 제도의 급격한 파괴와 신제도의 수립을 본질적 요소로 한다. 그러므로 혁명이 성공하면 기존의 법률은 효력을 상실해 혁명행위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쿠데타는 ‘힘에 의한 강압을 통해 권력이 다른 지배세력으로 이전되는 것’으로서 변화의 범위는 사회 전체가 아닌 정부 자체(지도자가 교체되는 등)로 국한된다. 따라서 쿠데타에 성공해도 정부조직과 사회제도를 비롯한 기존의 법질서는 유지된다. 이에 따라 ‘신군부가 일으킨 반란과 내란이 성공한 쿠데타이므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大法, ‘새로운 법질서의 수립’을 부정하다
일부 신군부 세력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 또한 여러 논리를 통해 성공한 쿠데타론을 반박하며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다. 우선, 신군부 세력의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했기에 과거의 법질서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주장을 무력화했다. 판결의 논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제헌헌법의 제정을 통해 △국민주권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기본권 보장 등을 근본이념으로 삼아 헌법질서를 수립했다. 이를 몇 차례의 개헌 속에서도 변함없이 유지해왔다. 그러므로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해 헌법을 개정해 국가를 통치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헌법의 근본이념과 전반적 토대는 굳건한 상황에서 대통령 선출 방식, 임기 등의 체제적 요소들이 고쳐진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폭력에 의해 정권을 장악하여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을 개정한 행위는 용인될 수 없기에 군사반란과 내란행위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판시는 새로운 헌법질서의 승인은 국민주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둘째, 대법원은 신군부 세력이 했던 비상계엄 선포 및 확대를 내란죄 적용 대상으로 판단했다.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는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성격을 지닌 행위로 선포의 부당성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 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위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경우에는 다르다. 대법원은 국헌문란이 목적인 비상계엄의 확대는 협박행위로서 형법상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에 해당하므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국헌문란: 헌법의 기본질서에 대한 침해

▲ 1996년 신군부 세력이 서울고등법원 재판정에 서있는 모습이다.


민주주의 공고화의 안전판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의 상고심 선고가 나옴으로써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에 추징금 2,205억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이 확정됐다. 또한 나머지 신군부 세력도 사법적으로 단죄할 수 있었다.
재판부 판시는 앞으로 유사한 무력적 정권탈취 행위가 발생할 수 있는 근거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영재<공공정책대학원 시민사회학과> 교수는 5.18특별법 제정과 함께 사법부의 판결이 ‘민주주의 공고화의 안전판을 확립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성공여부를 떠나 ‘앞날의 불법적 무력 집권 가능성을 차단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등, 대법원에 이르는 최종적 사법처리 과정은 한국 사회의 법치주의 원칙과 국민주권을 토대로 하는 민주주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진심이 담긴 승인을 얻지 않은 정권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한 것이다.

사진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참고문헌:
이영재 (2004). 과거청산과 민주주의: 5.18사법적 처리의 의의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4(2)
이영재 (2015).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5.18특별법.  민주주의와 인권. 15(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5.18 평석팀 (1997). 12.12, 5.18 판결 평석집.
서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김재균. 5.18과 한국정치. 에코미디어. 2010
서울고등법원 1996.12.16. 선고, 96노1892, 판결
대법원 1997.4.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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