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과 함께한 음악인생, 오페라로 꽃피우다
한양과 함께한 음악인생, 오페라로 꽃피우다
  • 소환욱 기자
  • 승인 2006.05.21
  • 호수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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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길 교수 인터뷰

< 사진 신현두 기자 >
우리나라 오페라계의 대부라 불리는 성악가 박수길. 올해로 16회째 공연을 맞이 하는 한양 OPERA THEATRE의 구노의 파우스트 연출을 맡았다. 지난 17일 제2음악관 4층에 위치한 오페라 준비실에서 지도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나봤다. <편집자주>





< 약 력 >
성악가
한양대 성악과졸
1997년 페르치오 탈리아비니  국제 콩쿨 심사위원
1998년 뮌헨 국제 콩쿨  - 성악부 심사위원
국립 오페라단 예술 감독 역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장 역임
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명예교수


"학문의 본질에 대한 심각한 고민, 그것의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 거기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나가며 탐구한다면 더욱더 대학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는 어떤 작품인가

‘파우스트’는 국내 오페라 무대에 많이 올려지지 않은 프랑스의 그랜드 오페라로서 음악적인 완성도가 굉장히 높은 작품이다. 연주시간이 조금 길지만 테너와 소프라노 등의 유명 아리아들이 많이 포함돼 있어 좋은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괴테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 이 작품은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 젊음을 얻은 파우스트와 어긋난 사랑의 희생자인 마르게리트, 이들을 지옥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하는 메피스토펠리스 등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오페라이다.

40여 년간 한양과 함께 하고 올해 정년퇴임을 했는데 이번 연출을 맡은 감회가 어떤가

나는 한양대학교 음대가 처음 생길 때인 1960년에 1회로 입학하고 1회로 졸업했다. 졸업 후에도 조교, 강사, 전임교수가 되고 한양대학교라는 테두리 속에서 평생을 음악가로서 생활을 해왔다. 특별히 기억이 남는 것이 있다면 한양대학교 오페라 1회 때인 70년에 리골레토라는 베르디의 오페라를 했는데 그때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때부터 한양대학교 오페라 시어터가 70년부터 지금까지 36년을 쉬지 않고 경연제를 해왔다. 이렇게 나의 음악인생은 한양대학교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특별히 한양대학교의 오페라는 기성 오페라단에 못지않은 연출을 해왔다. 그동안 학교 오페라를 연출 해온 것은 나의 큰 자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렇게 정년 퇴임을 하고도 연출을 하게 돼서 젊은 학생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기쁘고 즐겁다.

1회 오페라인 ‘리골레토’ 출연 당시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은 어떤가

당시 출연할 때는 내가 하나의 역을 맡아서 출연을 하고 노래를 하기 때문에 하나의 역할에 충실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연출이라는 것은 하나의 오페라 전체를 전부 책임을 진다. 그렇기 때문에 출연과 연출은 비중을 따질 수 없다. 하는 일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연출은 모든 출연자들 뿐만 아니라 무대장치, 조명들을 모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당시보다는 더욱더 책임이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오페라를 준비 하시면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나

에피소드라기 보다 대학 오페라로서 최초로 파우스트를 불어로 공연한다. 그렇기 때문에 출연하는 우리학생들이 불어 발음을 공부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연습할 때 발음 때문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사실 불어 발음이 굉장히 어렵다. 실제로 굉장히 고생하면서 연출을 했고 학생들도 그만큼 노력했다. 지금은 출연하는 학생들 모두 프랑스 사람처럼 불어를 잘 구사할 정도까지 이르렀다.

지금의 음악인 박수길이 있기 까지 가장 큰 도움과 영향을 준 사람이 있었나

물론 대학 다닐 때 배웠던 지도 교수님들께 큰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 특히 조상현 선생님께 가장 큰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음악에 관한 여러가지 나아가야할 길이라던가 이런 것은 많은 선배 선생님들이나 한국을 방문하는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성악가로서의 길이라는 것이 어떤 것 인가를 배웠다. 특별히 음악적 결심을 심어준 계기는 독일에서 지난 1930년대에 독일에서 유명하게 활동했던 게르하르트 휘시라는 세계적인 바리톤 성악가가 1961년 우리나라에 와서 내한 공연을 했었다. 당시 휘시는 환갑이 넘은 나이였지만 아름답게 노래를 했다. 그때 그분의 공연을 보고 나도 그분처럼 아름답게 노래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목표를 새웠다.

오페라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보통 크게 성악 연주에서 음악연주를 둘로 나누면 하나는 예술가곡 또는 종교 오라토리움 분야와 오페라 분야 이 두 가지로 크게 나눈다. 예술 가곡 분야는 어떤 노래든지 자기가 그 노래를 자기에 맞게 자기의 사상이나 자기의 느낌에 맞게 구현해내며 표현하면서 노래를 한다. 하지만 오페라는 그 오페라 속의 인물을 자기가 맡아서 열연을 한다. 악인이 될 수도 있고 종교인이 될 수도 있고 선인이 될 수도 있다. 여러 형태의 그런 인물을 자기가 맡아서 그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다.

만약 오셀로의 이아고역을 맞는다면 이아고처럼 악한 사람같이 연기를 하며 노래를 해야 한다. 내가 악한 사람에 동화되어 악인처럼 노래를 했을 때 성공하는 것이다.

자기와 다른 하나의 인물을 음악을 통해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흥미롭고 잘 표현 했을 때 보람을 느끼고 잘 표현해서 박수를 받았을 때 희열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은퇴하고 나서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예울 음악 무대’라고 하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소극장 오페라를 주로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소극장 오페라를 하는 첫 번째 단체로 시작했다. 지금은 소극장 오페라가 몇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큰 것을 좋아해서 오페라의 역사를 봐도 큰 것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오페라도 작은 틀이 잡혀있어야지 발전을 할 수 있는 분야이다. 유럽 쪽의 오페라를 보아도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큰 것으로 나아간다. 지금도 그러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작은 무대에서 기초를 다져서 큰 무대에 서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더욱 더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우리나라의 오페라 시스템은 그렇지 못하다. 앞으로도 이런 무대들을 많이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고 싶다.

한양대학교 재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학생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도 자기가 전공하고 있는 것들에 더욱 더 매진해야 한다. 성악이면 성악, 기악이면 기악, 작곡이면 작곡 등 그것에 본질에 대한 심각한 고민, 그것의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 거기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나가며 탐구한다면 더욱 더 대학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근본이 되면 졸업하고도 더욱 더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진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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