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인간에게도 부활이 있다
[교수칼럼]인간에게도 부활이 있다
  • 김창렬<의대 소아청소년과학교실> 교수
  • 승인 2016.04.12
  • 호수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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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사상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다. 기독교가 번성하기 이전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나 중국의 진시황제, 그리고 한반도의 고대 왕들도 자신들의 사후부활을 꿈꾸며 거대한 왕릉을 만들고 그 속에 자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소장품들을 함께 묻었다. 심지어 순장풍습까지 있었으니 역시 그들은 사후의 부활세계를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나 역시 기독교인이어서 부활문제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갖고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의 대화 중 들었던 부활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렬하여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몇 년 전 의예과 학생들을 위한 의료 인문학강의를 의뢰 받아 준비하면서 어린 시절의 일기장을 뒤적여본 일이 있는데, 중학교 3학년 추석 무렵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께서는, 예수의 부활과 같이 인간에게도 부활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부활은 바로 너다. 인간의 진가는 죽은 다음에라야 평가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의 아버지의 말씀은 지금까지도 나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한다.
아버지 말씀 속의 부활은 종교적 의미보다는 인류생물학적 자연계 생존법칙에 따라 우리 인간이 살아남아 자손을 번식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의학적으로 좀 더 깊게 살펴보면 우리 인간은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각각 23개의 염색체를 받아 총 23쌍의 염색체를 갖고 태어난다. 자신의 염색체 속에는 다른 사람의 부모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부모 유전자를 그대로 전수받게 됨으로 자신은 곧 부모의 복제품, 즉 부활체라고 의미화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뇌신경발달이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출생 이후에도 오랜 기간 부모의 보호 없이는 생존할 수 없고, 이 과정 속에서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며 부모의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닮아가기에 인간은 모두 부모의 부활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참다운 부활은 우리가 부모의 단순한 복제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상응하는 발전과 진보를 이룰 때에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인간의 인지기능과 자기조절기능, 그리고 판단과 결정을 주관하는 뇌 기능의 최고기관으로 알려진 전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은 20대까지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고등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설계하는 청년기까지 뇌 발달이 이루어지기에 인생에서의 20대는 참 부활을 위한 매우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나 역시 매일매일 어제의 나는 죽고 오늘의 나로 새롭게 태어난다. 즉 오늘의 나는 바로 어제의 나의 부활인 셈이다. 부모의 부활을 넘어 오늘 새롭게 태어나게 된 나는, 부활의 참 의미를 되새기며 거듭나게 될 자신을 위해 하루하루 더욱 충실히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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