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우열은 없다
우리에게 우열은 없다
  • 윤가은 기자
  • 승인 2016.03.19
  • 호수 14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색 인식 능력으로 보는 ‘진화’의 의미

다채로운 빛깔의 수려한 꽃이 있다. 이 꽃의 붉음과 푸름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이와 붉음만을 느낄 수 있는 이가 있다. 둘 중 누가 더 우월할까? 이 질문은 곧 ‘진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과도 일맥상통한다.

꽃이라는 대상이 있을 때, 붉거나 푸른 그 색은 꽃 자체의 본질적인 속성이기보다는 꽃에 반사돼 나온 빛의 파장을 뇌가 인식한 결과이다. 꽃의 색을 감상하려면 우선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충분한 빛이 존재해야 한다. 빛을 받은 꽃은 얼마간의 빛을 흡수하고 나머지는 반사시킨다. 이 반사된 빛의 파장이 눈으로 들어오면 망막에 분포해있는 약 600만 개의 원추세포들이 파장을 분석하고 전기적 자극으로 변환해 대뇌로 보낸다. 뇌는 이 신호를 받아 색을 인식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히포캠퍼스)에 색을 인지했다는 정보가 전달돼야 비로소 “색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원추세포.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순으로 많다.

원추세포와 진화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원추세포이다. 이 세포는 사물로부터 반사돼 들어온 빛의 파장을 분석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분석할 수 있는 색은 동물마다 그 가짓수가 다르다. 인간과 원숭이 등의 영장류와 캥거루에게는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의 삼원색을 인식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원추세포가 존재한다. 이 색들의 조합으로 사진에 보이는 색의 스펙트럼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특정 조류와 거북이의 경우 이런 원추세포의 종류가 더 많아 더욱 정교한 색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 다섯 종류의 원추세포를 지니고 있는 새도 있는데, 생물학자 이선경 씨는 이를 “정글과 같이 아주 화려하고 색이 다양한 환경에서 살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새가 사는 생태계가 세심한 먹이의 구별을 요하는 곳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포유류의 먼 조상은 지금의 영장류나 캥거루와 같이 세 가지 색을 인식할 수 있는 세 종류의 원추세포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먼 옛날 열매와 식물을 채취하던 인간은 독이 든 열매의 색을 구별하기 위해 발달된 색 인식 능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영장류와 캥거루 등을 제외한 나머지 포유류에겐 두 종류의 원추세포 밖에 남지 않았다. 한 종류의 색을 더 볼 수 있는 세포와 그 기회를 기나긴 진화의 과정에서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색의 범위
개가 볼 수 있는 색의 범위

더 발달한 것과 덜 발달한 것
그런 선택을 해온 포유류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건 개일 것이다. 개는 원추세포가 세 종류인 인간과는 달리 두 종류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개는 빨간색을 볼 수 없다. 그 대신 짙은 회색과 검정색으로 볼 뿐이다. 약 5000명 중의 1명꼴로 나타나는 적색맹 환자가 바라보는 세상과 흡사하다. 또한 인간에게 초록색으로 보이는 사물은 개에게 흰색 또는 노란색으로 보인다.

더 많은 색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삶에 구체성을 부여하게 만들고 그 덕에 인간은 더욱 창의적이게 된다. 다양한 색을 인지하고 학습함으로써 미의 기준이 바뀌고 다양해지며 삶이 풍부해진다. 그러나 생물학자 이 씨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색을 더 많이 인식할 수 있다고 해서 인간이 개보다 우월할까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는 사냥으로써 생명을 지탱했다. 사냥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개는 후각과 동체시력이 매우 발달했다. 사람이 대략 몇 만 종류의 냄새만을 구별할 수 있는 반면, 개는 몇 십만 종류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 또한 움직이는 사물에 뇌가 반응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체시력이 발달해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작은 움직임을 보인 사물을 재빠르게 알아챈다. 이 능력으로 사냥감을 민감하게 찾아낼 수 있다. 이젠 길들여지는 데 익숙한 개에 대해 생물학자 이 씨는 “주인의 경우 8~900미터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데 특히 주인이 움직일 때 더 잘 알아본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사냥견인 셰퍼드처럼 코가 앞으로 튀어 나온 개는 코가 납작한 개에 비해 눈이 양 옆에 치우쳐져 있다. 이는 양 옆 시야까지 장악할 수 있게끔 시야각이 270도로 넓혀지기 때문에 사냥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다. 그럼 이제 같은 질문을 다시 해볼 수 있다. “동체 시력과 후각이 월등하게 뛰어나다해서 개가 인간보다 우월할까요?”

진화에 방향은 없다
진화는 환경 변화에 따라 그에 적합하게 적응하기 위해 생기는 모든 변화를 일컫는다. 환경이 변하면서 필요없는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을 선택해가는 자연 선택의 과정인 것이다. 안주홍<자연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이렇듯 “진화의 방향성은 인간이 멋대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변화를 좋고 나쁜 이분법적 구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예가 있다. 동그랗고 납작한 모양의 적혈구가 유전자 이상으로 길고 뾰족한 낫의 형태로 생겨나는 낫세포빈혈증이라는 유전병이다. 이 병에 걸린 환자는 정상 적혈구를 가진 사람에 비해 생존율이 떨어진다. 길고 뾰족한 모양 탓에 세포가 온전하게 흐르지 못하고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자병으로 알려져 열등하다 여겨진 이런 고정관념이 뒤집히는 상황이 발생했다. 낫세포빈혈증에 걸린 환자일수록 정상적인 사람에 비해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말라리아는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병으로, 모기는 적혈구에 알을 낳아 병을 온 몸에 퍼뜨린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정상인의 적혈구는 널찍해 모기가 병균을 퍼뜨리는 데 유리했던 반면 낫세포빈혈증 환자의 적혈구는 길고 뾰족해 불리했을 뿐 아니라 병든 적혈구가 쉽게 깨지기도 했다. 생물학자 이 씨는 “진화란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보다 유리한 형질이 선택된 것에 불과하다”며 “불리하다고 생각했던 형질이 어떤 상황에서는 상당히 유리할 수 있기 때문에 진화에 있어선 옳고 그름의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유 없는 변화란 없고 모든 것에는 의미가 존재함을 깨우쳐주며 우리를 위로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느라 숨 가쁜 이들이여, 더 이상의 우열을 가리지 말자.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적응하려는, 같은 배를 탄 가엾고도 또 기특한 존재에 불과하니 말이다.       

도움: 생물학자 이선경 씨, 안주홍<자연대 생명과학과> 교수
참고자료: 「BIOLOGY」 (CAMPBELL, REECE, MITCHELL),  「인간의 모든 감각」 (최현석)
이미지출처: http://lea-test.fi/en/vistests/instruct/pv16/images/cone_cell.gif
http://dog-vision.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