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과열된 민족주의를 우려한다
동아시아의 과열된 민족주의를 우려한다
  • 문흥호 <국제학대학원 국제학대학원장> 교수
  • 승인 2014.09.20
  • 호수 14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부상은 21세기 국제질서의 주요 현상이다. 특히 중국의 강대국화는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대조를 이루며 이 지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문제는 한·중·일 3국에서 민족주의 정서가 과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민족의 강성을 바라는 것이 흉은 아니지만, 배타적 민족정서가 역사, 영토, 문화 갈등을 촉발하고 이것이 다시 민족주의를 격화시키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동아시아의 미래 주인공인 청년들마저 인터넷 공간의 ‘사이버 민족주의’(cyber nationalism)에 함몰되고 있다.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자민족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편협한 정서의 확산을 내버려둘 경우 동아시아의 미래는 절대로 밝지 않다. 자민족 중심의 사고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하여 3국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첫째,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확산이 많은 경우 정치지도자들의 정략적 고려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의 정치화’를 차단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계산된 관 주도의 민족주의 구호에 부화뇌동해선 안 된다.

둘째, 3국간의 인적·물적 교류증가에도 불구하고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가 저하되는 ‘이상 현상’을 치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류의 양적 확대보다 질적 발전에 주력하고, 자국 문화의 일방적 전파에 급급하기보다 동아시아 공동의 정신과 가치를 창출하며, 상호 인식의 정치·역사·과거 코드를 경제·문화·미래 코드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한·중·일 3국에 유학하고 있는 많은 학생을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의 촉매제로 육성해야 한다. 유학생들은 소중한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양적 확대에 치중한 결과 교육 프로그램, 학사관리, 생활환경, 취업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각국 정부, 대학, 교수, 동료 학우에 이르기까지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대한 유학생들이 한·중·일 3국의 관계발전에 교량적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배타적 민족주의, 애국주의로 무장하고 상대국 비난에 앞장서는 사이버 민족주의자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중·일의 인터넷 공간에서 상대국을 무분별하게 비난하는 청년들의 상당수가 그 국가에 유학한 학생들이라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한·중·일 3국의 정치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자국의 밝은 미래와 국민 행복을 약속하면서도 평화·공영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에는 소극적이다.

때로는 편협한 민족주의, 애국주의의 마술에 걸려 동아시아를 120년 전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과열된 민족주의의 폐해는 결국 한반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모두 열린 마음으로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