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벗어나기
매트릭스 벗어나기
  • 금혜지 기자
  • 승인 2014.08.29
  • 호수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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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이론과 그것들을 제시한 학자들의 이름을 들어왔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 기억으로 가장 다양한 분야의 수업에서 여러 번 언급된 학자가 있다. 전공인 미디어 관련 수업은 물론이고 사회학 수업에서도, 철학 수업에서도, 영화 관련 교양 수업에서도 등장한 학자의 이름은 장 보드리야르다.

그의 등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철학 수업과 교양 수업에서였다. 그에 따르면, 모든 실재를 대체하는 가상이 ‘시뮬라크르’이며, 현대인은 기호화된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가상실재가 실재를 지배하고 대체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매트릭스>다.

비단 SF영화에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기호들에 둘러싸여 있다. 제품이 아닌 브랜드를 소비하고, 인격이 아닌 이미지를 소비한다. 정말 현실적인 사례를 찾아보자면, 수업 시간에 민낯으로 출석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된다. 이것 또한 나에게 3년간 빈번히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이때까지 SNS의 프로필 사진을 민낯인 것으로 해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초췌한 모습을 실제로 마주치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괜찮지만,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나의 프로필 이미지(시뮬라크르)를 보고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은 괜찮지 않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 만들어진 허상과 함께 살아간다. 동시에 각종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는 이미지들을 의심없이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미지라는 개념은 보편적이지만, 그것이 고정관념이라는 틀에 갇힐 때는 아주 위험해지기도 한다.

최근 SNS에서 접한 후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게시물이 있다. 한 결혼정보업체의 광고로, ‘탈북 여성들의 장점’이라는 제목을 단 만화 형식의 게시물이었다. 여기서는 탈북 여성들을 ‘대한민국에 내려오면 혼자 살면서 외로움을 지니고 살고 있다’고 일반화한다. 심지어는 속옷 차림으로 “서방님~”이라고 하며 남편을 껴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해당 광고를 본 탈북여성 한경희 씨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정말 참 기분이 더러운 느낌이었다”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일반화라는 작업은 위험하다. 기사를 쓸 때 ‘학생’, ‘학교’, ‘교직원’ 등의 주체를 함부로 쓰지 말라고 배웠다. 흔히 쓰이는 단어일지라도 사람의 집합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쉽게 하나의 단어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근본적인 지침이지만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 잘 지키지 못한 적도 많았고 그 때문에 실수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본인을 언론인이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를 염두에 두고 기사를 작성할 것이다.

언론 매체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을 때는 적어도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의 기사를 작성했다. 물론 이전에도 지면에 실리거나 방송되는 모든 기사들이 철저한 저널리즘 정신에 의해 만들어지진 못했겠지만, 최소한 상업적인 가치를 맹목적으로 쫓는 콘텐츠들이 지금처럼 범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은 대부분 상업성과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속도가 중요시되는 SNS와 포털사이트에서 소비된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왜곡되거나 일반화된 이미지를 고민없이 받아들이기 쉽다.

미디어는 세상을 보는 가장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미디어가 재생산해내는 이미지들을 똑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은 본인의 노력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미디어 속에 일반화된 가상들을 해체하고, 출처를 찾으려 노력하고, 본인이 직접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시선은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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