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종자의 사형과 문화다원주의
개종자의 사형과 문화다원주의
  • 한대신문
  • 승인 2006.04.30
  • 호수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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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희 수 <국문대·문화인류학> 교수
다른 종교로 개종했다고 사형을 시키겠다니. 무함마드 만평 사태의 후유증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한 아프가니스탄 남성의 처형문제로 이슬람의 전근재성이 다시 한 번 도마에 올랐다. 압둘 라흐만이란 남성은 국제구호단체에서 일하다가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아내와 이혼당하고 가족들의 고발로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될 위기에 처했었다.

다행히 마지막 순간 쏟아지는 국제적 비난에 사법부가 그를 정신병자로 몰아 극형을 면하고 해외로 추방한다는 형식을 취했지만, 당사자나 우리 모두는 아찔한 위기의 순간을 경험했다.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에는 “다른 종교로 개정하면 사형을 시킬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이슬람 공동체의 분열과 와해를 막기 위한 방어기제로 보인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조항을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이슬람 국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많은 이슬람 국가가 이미 종교적 율법 대신 세속적인 법률을 채택했다. 이슬람법을 유지하는 일부 국가도 절도에 대한 손목절단형, 간통에 대한 투석형, 살인죄에 대한 참수형 등 잔혹한 응징을 다른 처벌방식으로 대체함으로써 극단적 충돌을 피해가고 있다.

사건이 일어났던 아프가니스탄은 오랜 외세의 침략과 피해의식 때문에 한 때 자신들을 지배했던 서구 기독교 세계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특히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팽배한 반미, 반기독교 정서가 이번 사태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던 것 같다.

자신만이 문명이고 선이라는 생각으로 이슬람 세계와의 전쟁을 계속하는 부시행정부의 일방적인 대외정책도 이번 사건의 공범인 셈이다.

21세기 들어 종교분리원칙을 받아들인 대다수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적 율법과 관습은 차츰 개인생활을 지배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다. 터키같은 나라는 오히려 이슬람 요소를 행정과 사법에서 철저히 배척하면서 공공기관에서 차도르 착용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형제도와 간통제까지 폐지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튀니지, 모로코,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도 여권신장이나 법률제도에서 서구에 못지 않는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전세계 14억 57개국 중심의 이슬람 세계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나름대로 전통적 종교성과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절충과 조화의 지혜를 찾아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탈레반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우리에게 아프가니스탄 사법부의 끔찍한 위협은 자유세계의 동의는 물론 이슬람 세계의 지지도 받지 못할 것이다.      

결국 코란 원래의 가르침과 그 정신을 손상시키지 않고 인류의 공동선과 복지를 위한 현명한 판단은 인간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개종자의 사형이 과연 인류를 구원하려는 신의 고귀한 뜻에 제대로 부합한 것인지 무슬림들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아마 절대 다수 무슬림들이 개종자의 사형집행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닌가 싶다.    

코란의 다른 조항에는 “종교에는 자유가 있나니, 너희에겐 너희의 길이 있고 나에겐 나의 길이 있다”는 이교도에 대한 포용성과 강제개종을 금지하는 가르침도 존재한다.

자신의 신앙을 남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다른 종교를 선택하는 행위를 단죄하는 것은 아무래도 제대로 된 이슬람적인 해석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1400년 이슬람 역사를 통해 이슬람은 자기와 다른 가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살아왔고, 이슬람 문명의 특성이야말로 문화다원주의와 문명 공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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