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자리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 오승훈<국민은행 재무기획부>대리
  • 승인 2013.09.28
  • 호수 13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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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먼저일까, 사람이 먼저일까. 우리는 흔히 자리를 먼저 정해두고,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일반적인 기업들은 조직을 기획, 재무, 인사, 영업, 홍보, 총무 등으로 구분한 뒤에 해당 분야별로 전문가를 찾고자 한다. 자리는 주어진 값이고, 사람은 종속변수인 것이다. 그런데 만일 사람을 먼저 정하고, 그 사람에 맞게 조직을 정하면 어떨까. 예컨대, A라는 사람을 먼저 정한 뒤, A의 스타일에 맞게 재무와 영업을 한데 묶고, 기획과 인사를 한데 묶는 식이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라는 책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저자인 짐 콜린스(Jim Collins)는 1965년부터 1995년 사이에 ‘포춘(fortune)500’에 등장한 수많은 기업 중에서 오랫동안 시장을 선도해 오며 탁월한 경영성과를 보여준 11개의 기업(질레트, 킴벌리, 필립모리스 등)을 찾아낸 뒤 이들이 보통의 회사와 달리 위대해 질 수 있었던 공통분모를 찾아내고자 했다. 연구결과 상식과는 다소 동떨어진 특징들이 발견되는데, 그 중 하나가 위대한 기업들은 자리보다 사람을 우선시했다는 점이다. 콜린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위대한 기업이라는 버스는 목적지를 정해두고, 그 목적지와 맞는 사람들을 찾은 것이 아니라 ‘적합한’ 사람들을 버스에 태운 뒤, 이들이 버스의 목적지를 정하고 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자리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조직의 틀에 갇혀서 사람을 구한 기업보다는 사람을 먼저 구하고, 그 사람에 맞게 조직을 유연하게 꾸려나간 기업이 잘 된 것은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자리보다 먼저라고 할 때, ‘누구’여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콜린스는 누가 ‘적합한 사람’인지의 여부는 전문지식이나 배경, 기술보다 성격상의 특질이나 타고난 소양과 더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몸담은 기업을 위대한 기업으로 만든 주역들에게서, 일에 대한 책임감이 높고 겸손하다는 특징이 발견된 까닭이다. 책임감은 자신의 조직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성실하게 일하게 했을 것이며, 겸손함은 타인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 조직 내 갈등을 조정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정리해 보면, ‘자리가 먼저일까, 사람이 먼저일까’라는 화두에 대해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라는 대답이 적당할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 특히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어떤 자리에 가기 위해 그 자리가 원하는 학력, 자격증 등 여러 가지 외형적인 스펙을 쌓느라 분주하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모두 자리를 정해놓고 거기에 사람들을 맞추려 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리보다 사람이 먼저일 때 위대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자리부터 연연하지 말고 나 자신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10점 척도를 가지고 자신의 책임감과 겸손함에 대해 냉정하게 점수를 매겨보자.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가. 위대한 조직을 만들 ‘적합한 사람’에게는 책임감과 겸손함이 졸업장이나 자격증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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