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공유하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 이희진 기자
  • 승인 2013.01.08
  • 호수 13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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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설렘’과 ‘긴장감’의 다른 말이 아닐까. 2013년 새해를 처음 장산곶매를 쓰기 위해 머릿속으로 주제를 선정해 구상하고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길 수백 번. 여전히 이렇다 할만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첫 칼럼이니만큼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 이 자리를 거쳐 갔던 수많은 편집국장들에 대한 존경, 항상 신문을 읽는 독자들에 대한 감사 때문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조심스럽긴 마찬가지다. 똑똑하고 멋진 말, 화려한 수식으로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다뤄볼까도 생각했지만 새해, 새 신문을 제작하는 시점이니만큼 다이어리를 쓰는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앞으로의 신문에 대해 가볍지만 진실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신문은 맛있는 요리와도 같다. 여러 신선한 재료들이 새로운 레시피를 거쳐서 탄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리가 ‘먹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음식물 쓰레기에 지나지 않듯 신문 또한 마찬가지다. 읽히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다. 하지만 현실에선 비올 땐 학생들 우산 대용일 뿐이고, 날이 좋을 땐 짜장면 깔개가 될 뿐이다. 신문의 존재를 몰라서, 읽지 않아도 졸업하는 데 무리가 없어서라는 것 외에도 여러 이유들이 있다. 여러 이유 중에서도 가장 큰 산은 신문이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이런 이유들에 슬퍼하며 자신을 책망하거나 실의에 빠질 때가 아니다. 영웅이 난세 속에서 탄생하듯 신문이 다시 한 번 도약을 준비할 때이다. 신문을 통해 학생들의 공감과 행동을 이끌어 내면 좋겠지만, 그 전에 신문은 잃어버린 위치를 되찾기 위해 먼저 독자들 사이에서 ‘공유’돼야 한다. 교직원, 학교, 학생 3주체가 소통할 수 있는 공통된 의제를 설정하는 역할을 다시금 해야한다. 독자들이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선행되야 할 때다.

또 신문을 통한 공유가 독자들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독자와 신문 제작자들. 이 두 관계의 거리감을 좁혔을 때 공유가 진정한 의미를 발한다. 의제를 설정하고,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한 뒤, 이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원하고 관심이 있어 읽을 만한 기사를 작성할 수 있어야한다. 독자들과의 소통이 신문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너무 구태의연한 말이긴 하지만, 어쩔 수 있나.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여전히 신문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생각하면 모래를 삼킨 것처럼 입안이 서걱거린다. 대학 외부적으로는 대학언론의 위기가, 내부적으로는 독자들의 무관심이 이 깊은 밤을 새며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매주 신문이 발간된다. 또 이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주는 선배들과 독자들이 있음을 믿는다. 이런 관심은 희망과 원동력이 돼 기자들을 더 많이 더 빨리 뛰어다니게 할 것이며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결국, 모든 문제의 해답은 ‘관심’이다. 관심이 가는 사람에게 한 번 더 말 걸게 되고 그 사람과 애정이 싹트면 비밀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제 기자는 매주 신문으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관심을 받고 싶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그러니 당신들도 당신의 이야기를 공유해 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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