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잘리는 파리목숨’ 노동법 저지투쟁
혁명의 어머니로 불려온 프랑스가 또 새로운 전통을
시작했다. 지난 18일 100만의 프랑스 청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의 구호는 하나였다. ‘CPE의 즉각적인 폐기!’ 최초고용계약(이하
CPE)은 청년실업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2년 안에 고용주가 아무런 이유 없이도 청년에 한해서는 언제든 해고를 가능하게 한 새 노동법이다.
1968년 미국을 포함한 서구 유럽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68혁명’ 이후로 이 정도의 대규모 시위는 처음이다.68혁명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그러나 현실적으로 되자’라는 구호 아래 노동·환경·여성·반핵 등의 문제를 사회의 중심 의제로 설정하는 성사를 거두었다. 68혁명의 발단은 대단치 않았다. 한 대학의 여 기숙사를 남학생들이 자유롭게 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시초였다. 이로 인해 각국의 학생운동을 비롯해 노동자운동이 거대하게 일어났고, 몇몇 국가에서는 정부 수반들이 교체되기까지 이른다. 그리고 거대한 저항의 물결은 1976년을 끝으로 가라앉는다.
비록 68혁명은 정칟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자본주의적인 체제를 개혁하고자 하는 사회변혁운동이라면 이번 시위는 CPE 반대에 머무르고 있어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으나 본질은 비슷하다.
이번 프랑스 학생들의 시위와 68혁명의 중심에는 노동이 있다. 68혁명 당시 학생들은 자본주의가 호황기를 마감하고 다시금 오일쇼크로 대변되는 불황기에 접어들게 되면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인식, 자본주의 및 권위주의에 반대한다. 이는 학생운동의 양태를 노동자와 연대 하에 대학점거에서 공단으로 옮겨가게 한다. 1970년대 유럽의 학생운동가들과 198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가들이 공장으로 투신한 이유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프랑스 시위는 고교·대학생 및 노조, 사회당 등 야당 지도부까지 참여했다. 이들은 오는 28일 전국적인 동조 파업을 예고했다. 전형적인 노동자-학생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진보연대 정영석 노동국장은 “두 학생운동은 기존 사회체제의 난관과 모순을 드러내고 대안을 찾기 위한 것이라는 데서 맥락을 같이 한다”며 “CPE는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법안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작은 쟁점인데도 노동자와 학생 간의 연대 하에 모순을 해결한다는 데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고 밝혔다.
1968년 이후 학생운동은 분명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학생들이 기존 사회 체계의 모순점에 대해 먼저 물꼬를 틔웠기 때문에 불만과 열망을 가지고 있던 다른 이들도 나설 수 있었다. 학생운동이 사회에 갖는 선도성은 유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목격할 수 있다. 1960년대 4·19 혁명, 1980년대 5·18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 항쟁은 모두 대학생들이 늘 앞장서온 것이다. 비정규직 법인문제가 노동계의 최대 현안인 지금 우리는 거리로 뛰쳐나온 프랑스 청년들의 저 외침을 그저 흘려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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