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기후현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달라진 기후현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 이형중<의대 의학과> 교수
  • 승인 2011.12.05
  • 호수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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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모레가 12월인데 정신 나간 봄꽃과 모기는 제 철도 모르고 여전히 눈과 귀를 어지럽히며 최면을 건다. 24절기(節氣) 중 입동(立冬)과 소설(小雪)도 지나 심란하게 추적거리는 비 대신에 아무도 모르게 살포시 현현할 눈을 기다리게 된다. 미련 때문에 뒤를 기웃거리다 사라질 가을에 이어 올해도 작년처럼 살벌한 동장군의 기습 한파가 펼쳐질 것이다.

여름도 겨울과 진배없다. 긴팔에서 반팔로 넘어가는 시기가 점점 짧아져 얼음이 녹자마자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게 되면서 자연은 바쁜 속내를 드러낸다. 방향성을 가진 사계절의 진행에서 인터메조인 봄, 가을은 가없는 길 위의 지친 인간에게 제한적이나마 노마드적인 유연성과 여유를 불어 넣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교향곡의 1, 3악장 역할을 하던 따뜻한 휴게실에 머물며 충전하던 귀중한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냉온을 가로지르는 화끈한 계절의 이중주는 관성에 따라 움직이는 대다수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빨리빨리’가 오늘날 우리를 만든 원동력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지만 지도도 주지 않으면서 출발점에서 종착점까지 밀어붙이며 과정을 생략해버린 결과지상주의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패배자로 내몰고 있다.

“경쟁은 미덕이요 승리는 달콤한 부상이다. 또한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진다.”는 천민자본주의의 좌우명은 우리 모두를 1등주의와 미이즘(me-ism)에 빙의시킨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게 돼 내가 하는 말은 진리이고 나의 판단기준은 불변의 법칙이 되어야 하며 내 감정은 만인이 공유하는 준거가 돼야 한다. 이 때문에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게 돼 내 말이 통하면 아군이 되는 것이고, 아니면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 아닌, 아예 싹수가 노란 ‘틀린’ 개념 없는 꼴통이 되고 만다.

타의에 의해 거시적인 판단기준에 휘둘려 참을성이 없어지고 중간 과정에서 남을 배려하지 못하게 되면 매사에 극단적으로 변하게 된다. 사물은 흑과 백으로만 구분되고 ‘회색’은 패배, 도피, 비주류, 비겁함, 불의와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된다. 주변 사람을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보조는 맞추고, 아니 최소한 뒤쳐지는 일은 없어야 하겠기에 열등감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자유경쟁에 족쇄를 채우는 또 하나의 건널목 차단기가 되고 만다. 흑이건 백이건 빨리 눈치를 보고 끼어들어 자리를 잡아야 주류행세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뭘 하건 피곤해진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시간이 지나 여당이 야당이 되고 진보가 보수가 되며 외국가수에 환호성을 질렀던 과거에서 K-팝을 수출하기에 이른 2011년이 되었다. 역사는 되풀이되며 투쟁과 응전을 반복하지만 결국 정반합(正反合)의 법칙을 따르게 마련이다. 봄, 가을이 사라지기야 할까. 여름태양과 겨울바람이 외투를 벗기려고 제 아무리 난리를 쳐도 봄과 가을은 여전히 찾아온다는 것을 생각하고 조금만 덜 화끈하게, 더 심심하게 하지만 시크하게 버텨보자.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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