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더미로 변한 동네 앞에서
흙더미로 변한 동네 앞에서
  • 하동완 기자
  • 승인 2011.11.20
  • 호수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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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뉴타운 세입자 현장 리포트

 

▲ <왕십리뉴타운 2구역 신축 공사현장>

김기철(가명) 씨는 경상북도 울산에서 태어났다. 그가 5살 때 “자식 교육은 서울에서 시켜야한다”는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서울특별시 상왕십리동으로 이사했다. 올해로 28살인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해 성수역 근처 중소 금속공장에서 일할 때까지를 그 동네에서 지냈다. 왕십리 토박이인 셈이다. 어릴 때 매일 같이 천둥벌거숭이마냥 헤집고 다니던 골목길부터 가끔씩 초코바 하나씩을 슬쩍했던 구멍가게, 매일 같이 다니던 등굣길을 그는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참 말을 안 들었어요. 장난이란 장난은 다 저지르고 다녔던 것 같아요. 덕분에 이웃 어른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편 이었죠”

그러던 그가 고등학교 2학년을 다니던 2000년에 뉴타운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됐다. 처음에는 동네가 깨끗하게 정비된다는 말에 모두들 즐거워했다.

그 뒤 몇 년이 조용히 지나가고 2008년이 오자 갑자기 동네 주변에 ‘뉴타운 물건 확보’라는 팻말을 단 부동산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평소에 보지 못한 낯선 사람들이 동네를 오가며 부동산을 드나들었다. 얼마 뒤 동네 곳곳에 성동구청장 직인을 박은 ‘왕십리 뉴타운 제1, 2, 3구역 재개발 사업 인허가 공고’가 나붙었다. 김기철 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시 몇 달간의 시간이 흐른 후 이웃 주민들 사이에서 뉴타운이 시작되면 “집주인은 보상금 받고 세입자는 쫓겨난다”는 말이 돌았다. 현행법에 의하면 재개발 대상구역의 세입자들은 가구원 수에 따라 4개월 치의 주거이전비를 지원받는다. 새로운 생활터전을 다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가방끈이 긴 어른들을 중심으로 주민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동네 사람들이 하나같이 빨간 띠를 묶고 데모를 했지만 뉴타운 사업을 막지 못했다. 구청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은 임시거주시설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김기철 씨의 가족은 후자였다. 동네 주변은 이미 전세대란이었다. 살만한 집을 구하기 위해선 서울 밖으로 나가야 했다.

“동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어요. 그나마 같은 교회에 다녔던 사람들은 가끔 얼굴은 보는데 다른 사람은...”

철거가 시작된 후 동네는 높은 벽으로 둘러 싸였다. 공사트럭이 드나드는 입구 사이로 간간이 황무지로 변한 그의 옛 동네가 보인다. 그 옆으로 길게 세워진 거대한 장벽에 ‘사람 살기 좋은 성동’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사진 류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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