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과 반성으로서의 문학
저항과 반성으로서의 문학
  • 유성호<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1.09.26
  • 호수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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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학의 위기를 강조하는 담론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문화생활이나 교육에서 문학이 차지하던 비중이나 가치는 매우 큰 것이었다. 학생들은 웬만한 교양서적 가운데 문학 작품이 여럿 섞여 있는 것에 대해 어색해하지 않았고, 각 분야의 지성인들 또한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도 우수한 문학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사유와 감각을 단련해 마지않았던 것이 사실이고 보면, 최근 나타나고 있는 문학의 위상 저하 현상은 역사적으로 매우 각별한 것이다. 이처럼 주류 문화의 정점에서 존재 가치를 입증해왔던 문학이 일정하게 왜소성과 비(非)대중성을 드러내면서 문학의 위기 담론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진단은 자본주의적 시장 원리에서 겪고 있는 문학의 왜소화 현상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상품 가치로서 가지는 문학의 장점이 다른 인접 분야들, 곧 영화,게임,관광 등 이미지 중심의 대체 범주에 의해 희석되면서 문학 작품이 대중들의 일차적 구매 대상에서 제외되는 현상이 그러한 위기의식을 낳은 것이다.

물론 문학도 ‘생산(작가)→유통(출판시장)→수용(독자)’의 경로를 밟으면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다는 점에서, 불가피하게 시장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작가들이나 문학 작품이 온갖 정치적, 인간적 관계의 매개를 통해 자기 실체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문학은 이중의 타율적 지배 아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우호적인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우리 문학이 택한 경로는 자본이나 매체 권력에 맞서는 저항의 방식이 아니라, 자본과 매체 권력에 자신의 존재 형식을 맞추는 순응의 방식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문학은 문학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지적 기능과 감각적 기능 중 후자로 무게 중심을 현저하게 이월하였다. 인지적 충격보다는 초월 기능이, 역사의식이나 형이상학적 감동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통속성과 감각 위주의 카타르시스 기능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러한 경향의 등극은 역사의식이나 지적 긴장 대신에 통속적이고 낯익은 풍경 속에서 위안을 받고 나아가 그 세계와 자신을 쉽게 동일시하려는 수용 주체들의 욕망이 당당하고도 숨김없이 표현된 것이다. 이 작품들이 원용하고 있는 쉽고 짧은 문장과 많은 여백, 빈번한 대화체, 평면적 인물, 직선적 시간 구성 등은 그 자체로 대중 친화적인 원리이겠지만, 그것이 섬세한 사유와 감각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 자명하다고 보면, 이러한 문학들이 문학 본래의 반성적 사유와 인지적 기능을 제공해주기 어렵다는 것 또한 자명할 것이다.

이제 우리 시대는 지식 정보화 사회로 빠르게 편입되고 있는 전환기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어느 시대나 전환기가 아닌 적은 없었지만, 지금 전환은 문명사적 성격을 띠는 거대한 것이다. 이때 우리 문학은 시장 경쟁력을 최우선의 존재 가치로 상정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문학의 존재 형식을 삶과 역사의 구체성에 두는 정공법으로 문학의 내적 균열에 대응해야 한다. 그래서 문학의 독자적 가치는 자본과 매체 권력에 다가서고 순응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에 저항하고 맞서는 미학적 전위에 의해 구현될 것이다. 그것만이 이미지 중심의 여타 예술과 문학을 가르는 유일한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은 자기 망각을 통한 대리 만족보다는 자기 반성적 속성을 지닌 예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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