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동거
유쾌한 동거
  • 권순애 과장
  • 승인 2011.05.02
  • 호수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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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애 과장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ERICA 학술정보관 강의정보자료실이다. 강의정보자료실에서는 매학기 수업에 사용되는 교재를 별도로 비치해 두고 자료실 내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업 교재로 사용되는 책이 모두 대출 중인 경우라도 강의정보자료실 자료는 대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수업 교재를 이용하기 위해 자주 찾는 편이다.

그런데 강의정보자료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이 하는 질문 중의 하나로 언제나 당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은 강의정보자료실 소장도서이지만 자리에 없는 자료를 찾는 경우이다. 대학별로 구분되어 있는 서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는다거나 혹은 익숙하지 않은 청구기호 때문에 자료를 못 찾는 경우는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서가를 샅샅이 살펴봐도 찾는 책이 없을 경우에는 문의한 학생에게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많은 양을 복사해야 하거나 자리가 좁아 강의정보자료실 밖에서 이용하고자 할 경우에 책 이름과 학번 등 몇 가지 정보를 학생 스스로 기록하여 누구나 책의 소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작성하지 않고 책을 들고 나가 자리에 없는 경우에는 담당사서로서 당장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몇 시간 후에는 자료가 제 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으니 그 때 다시 찾아보세요”라고 말을 하고 나중에 다시 보면 찾고 있던 자료가 실제 제자리로 와 있는 경우에는 마음을 쓸어내리며 안심하곤 한다. 수업에서 공통으로 사용되는 교재 같은 경우에 제자리로 쉽게 돌아오지 않는 책이 많아지게 되면 마음이 많이 무거워 진다. 심지어는 시험기간 중간에 슬그머니 없어졌다가 학기가 끝난 후에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어 한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여러 사람이 불편을 겪는다는 생각에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대상으로 좋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좀 불편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누군가와 나눠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때에 충분히 가지지 못하게 될 경우도 있고, 원하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될 때도 있다. 우리가 활동 하는 사회의 숫자만큼, 우리가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것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며 그것은 엄격한 법에서부터 소소한 규제 혹은 도덕으로 통칭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잘 지낼 수 있다는 자부심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바탕이 된다면 실제 규제 등의 형태로 다가오는 것들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규제나 제도가 번거롭게 느껴지는 경우는 우리가 함께 하는 곳임에도 일시적으로 개인적 편의만을 중심으로 하는 근시안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이럴 경우 가까운 친구가 나 때문에 불편을 겪을 수도 있고, 오히려 역으로 내가 불편을 겪게 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료실에 찾아오는 학생들 중에는 이제 서로 인사할 만큼 낯익은 얼굴도 있고, 새롭게 익혀 가는 얼굴도 있다. 나에겐 누구나 반갑고 소중한 존재들이다. 가끔 같은 자료를 서로 번갈아 이용하다가 궁금한 것을 서로 묻고 답하면서 친구가 되는 경우가 있는 데, 이럴 경우 참 보기 좋고 마음이 훈훈해진다. 이렇듯 내가 먼저라는 마음을 조금만 덜어, 옆자리의 학생이 언제든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번거로운 규제 없이도 훨씬 여유 있고 유쾌한 삶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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