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백화점’의 최후
‘뇌물 백화점’의 최후
  • 유지수 기자
  • 승인 2011.04.09
  • 호수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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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4월 25일 다케시타 노보루 일본 총리 사임 발표
나, 다케시타 노보루는 내년 예산안이 통과되는 대로 총리직을 사임한다.

지난 6월 불거진 리크루트 사건은 나의 정치계획을 바꿔놓았다. 나의 총리 재임기간 동안 가장 큰 목표였던 소비세를 드디어 신설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 마음이 복잡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리크루트 그룹은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정보산업회사다. 리크루트 그룹이 건설, 지역개발로 사업을 확장하려했던 사실은 이미 재계에서 공공연했다. 사업 확장 과정에서 정치적인 힘이 좀 필요했던 모양인지 나와 다른 의원들에게 비공개 자회사인 리크루트 코스모스의 주식을 나눠주더라. 정치인과 경제인이 어디 그리 먼 사이던가. 그래서 주식을 좀 받았다. 자회사를 공개하면 주식이 확 뛸 거라는 에조에 회장의 말을 듣고 투자 차원에서 좀 받은 것이다. 어디서 자민당 체면 떨어지게 ‘뇌물’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지 모르겠다. 유망기업에 이 정도로 투자하는 것은 경제 교육을 조금이라도 받은 사람이면 생각할 수 있는 바 아닌가. 이런 일을 두고 뇌물을 받았다며 나카소네 전 총리, 자민당 간사장 아베 신타로, 재무 장관 미야자와 키이치 의원까지 데려다 수사를 해 쓸데없이 소란만 키우고 있다.

아베 간사장이 “주식거래는 정치인이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행위이므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는데 나 역시 이에 공감한다. 주식거래도 결국은 상거래의 하나다. 투자에 ‘성의’ 좀 담았다고 뇌물이라니. 게다가 우리 자민당에만 준 것도 아니었다. 민사당의 쓰카모토 위원장, 공명당의 이케다 가즈야 의원, 사회당의 우에다 다구미 의원까지 많은 야당 인사들도 주식을 받았다고 한다. 또 마이니치신문 편집국장과 정치평론가, 도쿄 대학 교수까지 받았다는데 이게 어떻게 뇌물이 되나.

지금 자민당의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내각의 지지율은 15%로 일본 정부 역사상 세 번째로 낮은 지지율이다. 게다가 자민당 대표 의원 대부분이 리크루트 사건과 연루돼있어 자민당 내에서도 “지금 선거하면 대패”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34년 동안 여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자민당의 이름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사건이 보도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국회 증언을 거부해왔다. 나는 이 일에 대해선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내 금고는 비서인 아오키가 관리하는데 그에게 모든 혐의를 넘기면 되기 때문이다. 가끔은 큰일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할 필요도 있다.

나는 내각의 책임자로서 내가 내정한 정치인들이 이번 일에 관련돼 있는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국민들에게 정치적인 불신을 갖게 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 그러나 나에 대한 의혹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물러나지만 지금의 위기가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정치사를 이끌어온 자민당은 이런 일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야당이 아무리 이리 뛰고 저리 뛰어봤자 자민당은 여전히 여당이다. 내가 그만두면 자민당의 다른 파벌이 정권을 이어가면 될 일이다. 이 전에 록히드 사건 때도 그래왔다. 일본 정치에서 자민당이란 이런 존재다.

이번 일로 나는 총리직, 파벌의 영수, 당대표직을 모두 내려놓는다. 나의 정치인생을 함께한 자민당의 당적도 포기한다. 그러나 나와 정치, 자민당의 인연은 끝이 아니다. 이번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정계와 떨어져 제2의 정치인생을 준비 할 것이다.

도움: 김호섭<중앙대ㆍ정치외교학전공> 교수,
저서 「일본전후정치의 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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