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일까 부정일까, 대학생과 자기계발서
긍정일까 부정일까, 대학생과 자기계발서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1.03.12
  • 호수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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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한 고독을 감싸는 위험과 위안

대학생 한양이는 최근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상심해 있던 차에 기분 전환을 하고자 방문한 서점에서 새로 나온 자기계발서 한 권을 발견했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던 차에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올라와 있어 한 권을 샀다. 집에 돌아와 읽어보니 한양이에게 힘을 실어줄 만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한양이는 지금의 이 시련이 자신이 노력하기에 따라 극복될 수 있다는 점에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의 어려움이 순전히 내 잘못 때문인가 싶어 괴롭고 고독하기도 했다.

변화 그리고 우려와 마주 선 자기계발서

대형서점 ‘교보문고’의 2000년 이후 베스트셀러 동향 분석에 따르면 저서 「시크릿」이 11년간 누적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마시멜로 이야기」, 「긍정의 힘」 등의 자기계발서들이 베스트셀러 50위 안에 다수 포진돼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자기계발서에 대한 호응도가 일관되게 상승하기만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진영균<교보문고ㆍ홍보팀> 직원은 “자기계발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우화형 자기계발서가 2008년부터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소재 고갈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2000년대 중반 이후 다소 침체됐던 자기계발서 시장이 올해 초 부터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최근 들어 자기계발서는 ‘행복’, ‘청춘’ 등에 새로이 키워드를 맞춰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중이란 것이 진 직원의 설명이다.

이처럼 자기계발서 내에서도 주제, 형식 등의 변화가 있어왔다. 최근 자기계발서의 흐름에 대해 진 직원은 “경제 위기 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늘었고 이에 따라 독자들이 개인의 행복과 성찰에 중점을 둔 슬로라이프 등 새로운 생활양식을 추구하게 됐는데 이것이 자기계발서의 유행 속에 녹아든 것”이라고 전했다. 소재의 변화에 대해 황관석<진명출판사ㆍ기획부> 부장은 “포화상태였던 자기계발서들이 ‘심리’와 ‘사회’ 등의 소재를 다루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 직원 역시 “자기계발 방법을 매뉴얼화했던 것에서 삶과 인간적 태도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며 변화의 추이를 설명했다.

자기계발서의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우려도 커졌다. 그 중 하나는 자기계발서의 탐독으로 인해 여타 인문, 과학 등 교양서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적어질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나 진 직원은 “자기계발서의 인기로 인해 기존 특정 도서류의 판매량이 줄어드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며 “사실 출판 시장에선 ‘풍선효과’처럼 어디 한 군데가 늘면 다른 한 군데가 주는 현상을 찾기 힘들다”고 밝혔다.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

대학생들을 비롯한 다이어리 사용자들에게는 ‘프랭클린 플래너’란 상품이 다소 익숙할 법하다. ‘한국성과향상센터’에서 수입해 시중에 유통되는 이 플래너는 자기계발을 하고자 하는 이들의 세심한 계획세우기를 돕는다. 이 플래너와 연관돼서 이뤄지는 코칭 코스에 참여하려면 몇 백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 이처럼 자기계발에 드는 비용은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부담 정도가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자기계발서는 비교적 저렴하고 믿음직한 자기계발 도구인데 이 점이 자기계발서 열풍에 큰 몫을 한 셈이다.

자기계발서의 유행에 대해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자기계발서의 열풍은 ‘자기계발’의 열풍과 일맥상통 한다. 우리사회 자기계발의 열풍은 어디서부터 불어왔을까. 이에 관해 전상진<서강대ㆍ사회학과> 교수는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개념을 언급했다. 위험사회의 여러 하위 개념 중엔 계급ㆍ신분제가 철폐되고 사회가 변하면서 사람들이 개인화돼간다는 부분이 있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자유화와 동시에 기존에 개인이 기대고 있던 공동체의 안정성을 상실했다는 고독감이 개인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화에 따라 실패의 원인과 책임은 고스란히 개인에게 돌아갔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인식이 암묵적으로 정착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위험사회란 개념이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시기는 언제일까. 전 교수는 1997년 IMF 금융구제 사태를 꼽았다. 이를 계기로 한 번 직장을 구하면 정년퇴임 때까지는 유지될 것이란 기대가 부서지게 됐고 사회학적 개인화가 촉진됐다. 전 교수는 “여기에다 윤리적 판단이 더해지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며 “성공은 좋은 것이고 실패는 나쁜 것, 게으르고 못된 것이란 메시지가 우회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생들은 이 굴레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점점 더 어려워지는 고용 시장과 대학생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기 때문이란 것이 전 교수의 설명이다.

물론 자기계발서의 지나친 탐독 자체에 대한 문제는 간과할 수 없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교양도서 선정위원이었던 여희숙<도서관친구들> 대표는 선정 기준에 대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권장 도서인 만큼 보편적이고 인문학적인 교양을 쌓을 수 있게 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여 대표는 도서 중에서도 자기계발서는 제외하는 편이라며 그 이유에 대해 “국가에서 권하지 않아도 많이 찾아보는 도서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 교수는 자기계발서를 ‘항우울제’에 비교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복용하는 항우울제는 중독성이 있어 끊기 어렵고 또한 우울증 자체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증상에 대한 일시적 처방일 뿐이다. 이와 같은 자기계발서의 중독성에 대해 전 교수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자꾸만 습관처럼 새로운 내용의 자기계발서로 자신을 충전하길 원하며 이전의 이야기와 새로 습득한 이야기를 혼합해 안정을 찾으려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전 교수는 “사회와 현실의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꿈으로써 당장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한다는 점에서도 항우울제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 교수는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항우울제를 먹는 것처럼 개개인의 힘든 상황을 보상하고 구원해주는 역할을 하는 자기계발서를 부정할 수만은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여 대표 역시 “깊이 있게 읽는 것을 권하진 않지만 가볍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서 자체를 나쁘게 볼 순 없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일러스트 심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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