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익명을 요구한 것일까
그들은 왜 익명을 요구한 것일까
  • 김가연 기자, 유병규 기자
  • 승인 2010.11.06
  • 호수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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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아닌 의무가 돼버린 과 학생회비

철수(가명)는 신입생이다. 학기 초 소속과 학생회장으로부터 학생회비를 납부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학생회비를 내지 않으면 사물함 배정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철수는 ‘혹시나 대학생활에 피해를 겪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학생회비를 냈다. 매년 과 학생회에선 신입생들에게 적게는 7만원에서 많게는 20만원의 4년치 회비를 한 번에 요구한다. 과마다 예산 책정기준도 다르다.

또 새로배움터비와 함께 고지하거나 집으로 고지서를 보내는 등 가지각색의 방법들이 신입생들에게 과 학생회비 납부의 선택 아닌 의무를 강요한다. 지난 학기 초, 중어중문학과에선 과 학생회비를 납부한 학생들에게만 학생증을 지급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물론 과 학생회비는 자율적으로 내는 게 원칙이다.

학생들의 의견은 어디로

과 학생회비를 납부한 한 학생은 “돈을 낸 만큼 혜택을 누렸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며 “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만약 입학 직후가 아닌 지금, 납부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만나본 대부분 학생이 고개를 저었다.

과 학생회 활동을 했었다는 학생 A는 학생회비로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가 밝힌 과 학생회비 사용은 이렇다. 만약 게임기가 필요하다면 게임기를 구입한다. 여기에 학생들의 의견은 듣지 않는다.

물론 모든 학생이 게임기를 이용할 수 있지만 당연히 학생회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에, 학생회에서 더 많이 쓸 수 있으니까 구입을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어디에 쓰이는지 알기 힘들고 만족할 수도 없는 결과가 나타난다.

과 학생회비, 사물함을 여는 열쇠?

사물함 배정은 학교가 단대학생회에 위임하고 단대학생회에서 과 학생회로 위임하는 구조다.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사물함은 과 학생회비와 관계가 없다. 하지만 매년 신입생들은 사물함을 받기위해 돈을 낸다. 단대마다 사물함 배정방식이 다르고 과마다 배정방식이 다르다.

대다수의 단대, 과에선 학생회비를 납부하지 않으면 사물함 배정에서 탈락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다. 한 학생은 “학생회비를 납부했지만 사물함을 받지 못했다”며 “오히려 미납한 친구가 사물함을 받았다”고 말했다. 학생 A는 현재 그 친구와 사물함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두려움이 만든 금기

몇몇 모범적인 사례는 있다. 서울캠퍼스 사회대에선 개강총회 때 과 학생회비 내역을 학생들에게 공개하고 질의응답시간을 가진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회의는 끝나지 않는다. ERICA캠퍼스 경상대 경제학부에선 행사가 진행될 때마다 납부혜택을 홍보하고 사용내역을 대자보로 공지한다. 하지만 많은 단과에선 공개를 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과 학생회비가 사적인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학생 B는 “선배들 술자리에 과 학생회비가 사용된다는 소리는 들었다”며 “만약 이런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너무 기분이 나쁘다”라고 말했다. 만나본 학생들에게 학생회비 사용내역을 알고 있는지 물어봤지만 답변을 한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과 학생회비 사용내역을 물어보지 않았던 이유로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이익이 두려워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몇몇 과에 회계장부 공개를 요청했으나 대부분 거절했다. 기사에 나온 모든 학생이 익명을 요구했다. 혹시라도 알려지면 불이익을 겪진 않을까라는 걱정 때문이다. 내가 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알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김가연 기자 eq2004@hanyang.ac.kr
유병규 기자 yoobqoo@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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