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타기 경보를 울립니다
물타기 경보를 울립니다
  • 김규범 편집국장
  • 승인 2010.09.04
  • 호수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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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대신문을 보면 ‘사선에서’란 코너가 있습니다. 기사에 담지 못하는 현장의 목소리나 분위기를 전달하고자 기획한 코너였습니다. 사선(死線)에 서 있는 기자의 시선에서 좀 더 현장에 밀착해 독자들에게 기사 바깥 이야기를 전달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기자들은 해당 사안 당사자들에 비하면 현장에서 한 발자국 정도 떨어져있습니다. 정말 ‘사선’에 서 있는 사람들은 기자가 아닌 다른 분들입니다. 그래서 그 분들과 기자의 시선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그를 풀어내는 기사도 가끔은 현실과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론 오히려 당사자들에 비해 좀 더 정확하게 사안을 판단할 수 있는 위치가 기자의 입장입니다. 이해관계를 떠나 여러 취재처를 돌아다니다보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죠. 당연히 이때 기자의 위치에 대해 자만하거나 자신의 시각만 무턱대고 믿어선 안 됩니다. 현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죠.

흔히들 말하는 ‘물타기’라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는 이런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타기란 사안의 핵심을 보지 못한 채 곁가지에 불과한 사항을 이슈화 시키는 일을 뜻합니다. 이는 사안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너무나 신뢰해버린 기자나 데스크진의 오만과 편견에 의한 현상입니다. 이슈 메이킹이라는 언론의 기능과 사실 전달이라는 언론의 본분을 헷갈린 결과이지요. 기자이며 편집국장인 저 역시 때론 그런 오류에 빠질 때도 있어 항상 조심하곤 합니다.

특히 이번 815행사처럼 민감한 사안 같은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행사를 진행한 공대 학생회, 이를 저지하려했던 총학생회와 학교 까지 첨예하게 맞물려 있는 사안입니다. 그런 만큼 사안의 중심에 있는 논점을 정확하게 잡아내 이에 대한 입장 차이를 전달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본의 아니게 당사자들의 잘잘못을 가리게 되거나 현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타기를 한다고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되레 일부러 물타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임명된 조현오 경찰청장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른바 차명계좌 발언이 알려진 후 정치권은 차명계좌 재수사 논란으로 들끓었습니다. 그 발언과 관련한 논란의 본질은 한 국가 경찰들의 수장이 될 사람의 입에서 사실 확인이 안 된 사안을 발표한 무모함과 그로 인한 경찰의 신뢰성 추락 이었습니다. 하지만 방향은 엉뚱한 차명계좌 존재 유무로 튀었고 그 뒤에는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물타기가 있었습니다. 문제성 발언을 한 조현오 경찰청장을 비판하기보다 차명계좌의 유무와 재수사 여부에 대해 더 초점을 맞춰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조현오 후보자는 결국 경찰청장 자리에 앉았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이 자행한 물타기는 결국 조현오 경찰청장을 위한 결정이었을까요.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짓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을 까요. 현장에서 한발자국 떨어져있는 기자들도 뻔히 알 수 있는 사실이고 그보다 더 떨어져있는 국민들도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었는데 정작 당사자들이 외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들의 행각은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그런 움직임이 학내에서도 벌어질까 우려됩니다. 이번 815행사 때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때 아닌 이념논쟁은 이런 우려를 낳게 했습니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행사나 단체의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빨갱이, 종북 등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념논쟁이 불거졌습니다. 그리고 현재 815행사 관련한 논쟁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물타기를 자행하는 몇몇 사람들을 비난하기보다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게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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