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통해 내면을 들여다본다
신화를 통해 내면을 들여다본다
  • 문종효 기자
  • 승인 2010.04.03
  • 호수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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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과 변신으로 보는 신화의 특성

천지가 분리되면서 미륵이 세상에 출현했다. 미륵은 일월성신을 조성하고 의ㆍ식 문화를 선보였다. 미륵이 물과 불의 근원을 알고 난 후 천상에서 벌레를 얻어 인간 한 쌍을 창조했다. 미륵이 다스리는 세상에 석가가 나타나 미륵과 인간세상을 놓고 경쟁을 벌였다. 석가가 마지막 내기에서 미륵의 꽃을 훔쳐 내기에서 승리했다. 그러자 미륵이 석가에게 저주를 퍼붓고 떠났다. 석가는 인간무리 수천명을 창조하고 화식 문화(음식을 익혀먹는 문화)를 선보였다. 석가의 무리 중에 화식을 거부한 두 중이 소나무와 바위로 변신했다.”
함경도 지역의 창세신화인 「창세가」이다. 불교에서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두 부처가 인간세계를 가지기 위해 서로 대결한다는 이 신화는 여러 가지로 큰 의미를 가진다.

원형적 상상력에 따른 지역별 특징

이야기 자체는 다르지만 소재 및 전개가 이와 유사한 신화는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본래 이승을 다스려야 할 대별왕이 아우인 소별왕의 잔꾀에 넘어가 이승의 지배권을 빼앗기고 저승을 맡게 된 이야기를 다룬 「천지왕본풀이」, 나무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이 대홍수 때 아버지인 나무를 타고 올라가 여러 가지 고난을 넘어 인류의 시조가 된다는 이야기를 다룬 「나무도령」 등 수많은 신화가 한반도 특유의 원형적 상상력에 기초를 두고 만들어졌다.

인간사를 통해 수많은 것들이 변화하거나 사라지지만 그중에서도 변하지 않고 오래도록 존속하는 이야기를 ‘원형’이라고 한다. 오랜기간 유지돼왔기 때문에 원형은 그 집단의 가치관 및 문화양식을 대변한다. 따라서 원형은 곧 그 지역 신화의 특징으로 연결지을 수 있다.

「창세가」를 비롯한 세 편의 창세신화에서도 우리민족의 원형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세 편의 신화에서는 공통적으로 속임수를 써서 승리한 부정적인 존재들(석가도 이야기 자체에서는 부정적으로 묘사된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실세계의 승자가 돼 세상을 지배한다. 신의 그릇된 통치가 세상을 도탄에 빠뜨렸다는 인식은 한반도 창세신화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오세정<학부대학> 교수는 “미래불 미륵의 저주는 현실세계에 대한 부정을 나타낸다”며 “그런 현실과는 다른 미래를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이 「창세가」에 담겨있다”고 말했다.

이는 신을 전지전능한 존재이자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는 서구의 신화들과 다른 점이다. 우리나라의 신화는 신을 대하는 친근함이 서양의 신화보다 훨씬 강하다. 이 때문에 부엌신, 분만신, 마을신, 나무신 등 인간과 친근한 신들이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 「바리데기」나 「당금애기」 등 평범한 인간이 신이 되는 신화도 존재한다. 현실세계의 부정적 사회상은 현세를 다스리는 신들의 잘못으로 귀결된다. 이는 신이 우리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원형과 연결된다. 오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신들은 인간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돼있다”며 “현실의 부정을 유토피아에 대한 염원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에서 인간을 높이 평가하고자 하는 우리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영웅의 행적도 다른 지역의 신화와는 차별화되는 특징이다.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등의 서양의 영웅들은 대부분 승승장구하다가 마지막 관문, 자신의 운명을 건 싸움에서 패배한다. 중동 신화의 주인공인 길가메시 또한 불사의 방법을 알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실패하고 죽음을 맞는다. 신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존재가 죽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비장미는 서양 및 다른 몇몇 지역에서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영웅들은 대부분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고구려 건국신화의 영웅 주몽은 부여에서의 질투로 인해 고난을 당하다가 졸본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국조가 된다. 이에 더해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저승으로의 모험을 떠났다가 종국에는 망자를 애도하는 신이 된 바리데기나 현세의 출산을 맡는 신(삼신할미)이 된 당금애기 등 우리나라 신화는 대개 긍정적인 결말을 맞는다.

자연물이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것도 우리 신화만의 원형적 특징이다. 신화성이 다소 약한 온조신화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건국신화에서는 영웅을 돕거나 그와 관계된 수호동물이 등장한다. 석탈해 신화에 등장하는 까치,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곰, 북부여 신화에 등장하는 용, 신라의 초기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닭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무속신화나 창세신화에서도 주인공을 돕는 동물이 자주 등장한다. 임태홍<성균관대ㆍ동아시아대학원> 교수는 논문 「한국 고대 건국신화의 구조적 특징」을 통해 “일본이나 중국의 신화에서도 동물들이 일부 등장하긴 하지만 이들은 신화의 주체세력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동물들이 아니다”라며 “우리나라 신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대개가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신화에 드러난 존재론적 초월, 변신

모든 신화는 전승집단의 초월욕구에 의해 생성되고 전해진다. 이는 현실의 억압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과 유토피아로 회귀하려는 본능적인 욕망 때문이다. 여기서 신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변신’이 드러난다. 앞서 제시한 「창세가」에서도 석가가 다스리는 현세를 거부한 두 승려의 변신이 드러난다. 이들은 유한성을 의미하는 석가의 세계를 거부함으로서 영원을 상징하는 소나무와 바위로 변한다. 현실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룬 것이다.

오 교수는 “그리스ㆍ로마 신화의 원제는 ‘변신이야기’인데 이는 변신이 신화의 가장 대표적인 특성이라는 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며 “변신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며 이에 대한 염원이 신화 장르를 탄생시켰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신화에서 드러나는 변신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알이다. 수많은 건국신화에서 주인공들은 알에서 태어난다. 이는 알로 태어나고 알이 깨지면서 ‘다시’ 태어나는 재생을 의미한다. 알에서 태어난 영웅들은 일반인과는 다른 신성성을 부여받게 되고 이를 통해 자연스레 자신의 우월성을 정당화하게 된다.

영웅들이 그 능력을 시험받게 되는 장면에서도 변신은 자주 목격된다. 유화를 얻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인 하백과 변신경쟁을 벌인 해모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백은 해모수의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잉어, 사슴, 꿩으로 변신한다. 여기에 대응해 해모수는 물개, 승냥이, 매로 변신하는데 이 과정에서 해모수의 신성성 및 우월성이 드러나게 된다. 가야의 왕권을 놓고 수로와 탈해 역시 변신술로 경쟁한다. 서양 역시 다양한 형태의 변신이 나타난다. 동물로 변신해 수많은 여성들을 탐닉하는 제우스, 아프로디테의 노여움을 사 거미로 변해버린 아라크네 등 변신은 그리스ㆍ로마 신화의 주요 소재다.

변신은 형태상의 변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북유럽신화에서 늑대 펜릴에게 먹혀버린 오딘, 제우스에 의해 유폐당한 시간의 신 크로노스, 부여의 서자였던 주몽이 우여곡절 끝에 고구려의 초대왕이 되는 것 등 인물들의 위상 변화 또한 변신의 범위에 포함된다. 지역마다 변신의 범위나 격차는 차이가 있지만 이런 변신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다양한 범위에 걸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오 교수는 “사람은 누구나 지위가 상승하길 바라는데 이 소망의 극단적 표현이 바로 동명왕 신화”라며 “욕망을 실현시키고 운명을 바꾼 주몽은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대중을 매료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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