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음식 삼겹살의 기막힌 위상변화
국민음식 삼겹살의 기막힌 위상변화
  • 문종효 기자
  • 승인 2010.04.03
  • 호수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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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늦은 밤 출출한 우리의 배를 채워주는 ‘친근한’ 음식이다. 보건복지부에서 2006년에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통계자료에 따르면 삼겹살은 우리국민의 에너지원 가운데 당당히 8위를 차지했다. 이는 돼지고기 전체가 아닌 순수 ‘삼겹살’만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우리국민의 연간 삼겹살 소비량은 1인당 9kg으로 추정된다. 성인 기준으로 월 3~4회 가량 삼겹살을 먹는다는 얘기다. 대체재인 쇠고기와 닭고기의 소비량이 각각 7kg, 8kg인 것과 비교해볼 때 국내에서 삼겹살의 위상이 어느정도인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세계 삼겹살의 대부분을 한국인이 먹는다’는 이야기도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ㆍ미국 등지에서는 삼겹살 부위를 우리처럼 즐겨먹지 않기 때문에 상당량을 해외에 수출한다. 한국은 이렇게 수출되는 삼겹살의 최대 수입국으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하지만 삼겹살의 대중화가 의외로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구이로써의 삼겹살은 고작 30여년 가량의 역사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정확한 유통경로를 찾기 어렵다. 노동자들이 건축자재에 삼겹살을 구워먹다 대중화됐다거나 광부들이 먹는 음식이었다가 대중화됐다는 등 삼겹살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진위여부를 떠나 이런 가설을 통해 이끌어낼 수 있는 사실은 당시 삼겹살은 매우 값싼 고기였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고기 조리법은 주로 ‘국물에 끓여먹는’ 방식이었다. 육류의 절대량이 부족했던 그 옛날, 고깃국을 끓이면 고기의 육즙과 고기맛이 우러난 맛있는 국물까지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국물류가 발전한 과거의 고기 조리는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구워먹는 고기의 대표인 삼겹살이 대중화된 시기는 고기의 공급량이 확대되는 7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삼겹살이 인기를 끌면서 여러 가지 방식의 삼겹살이 등장했다. 80년대에는 솥뚜껑을 이용해 고기기름이 아래로 흐르게 하는 방식의 삼겹살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기름이 자동으로 아래로 빠지게 하는 솥뚜껑 방식은 당시로 보면 혁신적인 구이방식이었다.

90년대 초반에는 싼 가격을 무기로 한 대패삼겹살이 인기를 끌었다. 고기를 아주 얇게 썰고 물에 불린 뒤 다시 냉동한 대패삼겹살은 1인분 가격이 짜장면 가격보다 저렴했기 때문에 서민층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구우면 고기가 크게 수축해 둘이서 20인분을 먹었다거나 혼자 8인분을 먹었다는 등의 웃지못할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삼겹살의 소비가 오늘날처럼 ‘국민음식’으로 격상될 정도로 폭증한 것은 IMF 구제금융 이후부터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해 해고당한 회사 임직원들이 너도나도 삼겹살 전문점을 차리면서 전국적으로 삼겹살 열풍이 몰아쳤기 때문이다. ‘와인숙성 삼겹살’, ‘3초 삼겹살’, ‘녹차 삼겹살’, ‘훈제 삼겹살’ 등 다양한 형태의 삼겹살이 이 시기부터 나타났다. 최근에는 여러 집단의 마케팅 전략에 힘입어 ‘삼겹살 데이’까지 등장했다.

삼겹살이 국어사전에 정식으로 등재된 것은 1994년의 일로 10년이 조금 넘은 정도다. 그럼에도 삼겹살은 그보다 전통이 긴 어떤 요리보다도 많이 소비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화 열풍에 편승해 삼겹살을 해외에 수출하기까지 한다고 하니 삼겹살의 위상이 어디까지 변화할지 벌써부터 궁금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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