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코프의 사적인 세계, 소설 「롤리타」
나보코프의 사적인 세계, 소설 「롤리타」
  • 유현지 기자
  • 승인 2010.03.06
  • 호수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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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 서사와 대범한 소재가 이끄는 소설의 미학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 리- 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 리. 타’

소설 「롤리타」는 주인공 험버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백서를 배심원들에게 제출하며 시작한다. 롤리타를 찬미하는 문장을 시작으로 독자들은 험버트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경위를 읽는다.

독자들은 험버트의 실패한 첫사랑을 함께하면서 묘한 매력의 소녀들을 ‘님펫’이라 명명하며 집착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험버트가 묘사하는 롤리타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더듬으며 불가항력적인 매력의 롤리타를 상상한다.

‘매혹된 사냥꾼들’이라는 모텔에서 보내는 그들의 첫날밤, 적극적인 롤리타와 오히려 수동적인 험버트의 관계를 보며 독자들은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간할 수 없게 된다. 독자를 가해자의 입장으로 끌어들이는 소설 「롤리타」에 대해 한 비평가는 ‘험버트는 독자들을 그의 불법적인 성폭력과 살인의 공범자로 만든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소설의 중심에는 ‘롤리타’가 있다. 롤리타는 돌로레스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12세 소녀다. 돌로레스는 예쁘긴 하지만 달콤한 퍼지 아이스크림, 뮤지컬, 연애 소설 ‘따위’를 좋아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소녀일 뿐이다.
하지만 험버트에게 있어서 ‘롤리타’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내가 미치도록 소유했던 것은 돌로레스가 아닌 내 자신의 창조물이었다. 또 다른 환상 속의 롤리타. 롤리타보다 더 진짜 같은 롤리타’

험버트는 여행을 하며 롤리타가 ‘넌더리 날만큼 틀에 박힌 어린 소녀’라는 사실을 깨닫지만 롤리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작품은 롤리타의 성장과정이기도 하다. 롤리타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소녀다. 소녀의 성생활은 성장하는 ‘놀이’다. 돌로레스는 친구 찰리와 어른들의 행위라 생각되는 ‘놀이’를 함으로써 아직 도달하지 못한 어른의 삶을 모방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동적이고 무력하던 롤리타는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갖는다. 험버트가 시작한 여행을 점차 롤리타가 주도해나가는 것은 여행이 곧 롤리타의 성장 과정임을 보여준다. 결국 어른에 도달한 롤리타는 험버트로부터 탈출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는 대담한 소재뿐만 아니라 나보코프의 실험적 서사방식도 관심을 모았다. 나보코프는 중간 중간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제발 독자들이여, 내 책의 부드럽고 민감하고 신중한 주인공에게 분개할지라도 가장 중요한 이 페이지를 그냥 지나치지 말길 바란다’

저자는 이로써 독자와 험버트의 공범자적 역할을 공고히 한다. 나보코프의 이 묘한 서사적 특징은 험버트와 저자를 동일시하는 오해를 만들기도 했다. 이 같은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나보코프는 ‘나는 내 작품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험버트의 이야기가 끝난 뒤 사람들은 ‘무엇을 말하려는가’에 대한 물음표를 떠올린다. 이 질문에 대해 나보코프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소설은 미학적 지복을 주는 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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