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속에서 답을 찾다
아픔 속에서 답을 찾다
  • 최서현 기자
  • 승인 2010.03.06
  • 호수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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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시를 쓰는 시인, 김경미<사학과 78> 동문

그녀의 시는 삶의 허무함을 바라본다. 세상 곳곳에는 상심뿐이다. 삶 속의 고통, 그것을 얄밉게도 꼬집어내지만, 곧 그녀는 답을 속삭여 준다. 고통을 달래는 데 순서 따윈 없다는 걸, 그저 견디는 것뿐이라는 걸. 시인으로서 그녀의 삶은 ‘나는 왜 고통스러운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녀의 시에는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알알이 숨겨있다. 나약한 만큼 강한 김경미 동문은 그런, 시인이다.

오만한 시인의 성숙한 고통
김 동문은 어릴 적부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구를 찾고자 했다. 가정의 불화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문학은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도구였다. 도구에서 시작한 것이었지만 그녀의 글 실력은 어릴 적부터 뛰어났다. 고등학생 때 국어선생님이 “기성 시인들의 시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극찬을 할 정도였단다. 자신의 실력만큼 김 동문은 문학에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문학지상주의였죠. 내 삶은 문학만이 전부였고, 이것 없는 난 일그러진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문학을 갈구했어요.”

그런 김 동문이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과정은 꽤나 ‘오만’하다. 취직 후에도 문학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고, 스스로도 시 만큼은 잘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춘문예 응모에 필요한 시는 3편이었지만 준비된 시는 2편뿐이었다. 마지막 1편은 평소 적어두었던 한 구절에서 시작해 단숨에 쓴 시였다. 그 시가 김 동문의 당선작 「비망록」이다.

“처음엔 당선됐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았어요. 시를 많이 써놨던 것도 아니었고요. 사실 만만하게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요(웃음). 그런데 당선된 작품이 단숨에 쓴 그 시라는 걸 듣고 또 다시 놀랐죠.”

시를 쉽게 생각했고, 등단도 쉽게 했지만 오히려 시인이 된 이후 김 동문에게 고통이 왔다. 쉽게만 생각했던 시가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다. 게다가 ‘시끄러운 시대’에 그녀는 이제껏 써온 시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됐다. 사회의 악질적인 모습을 몰랐던 이전의 시는 장식만 있는 가치 없는 시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심지어 써오던 습작 노트를 버리기도 했단다. 그녀가 바라본 사회를 있는 그대로 시에 담아내니, 정제되지 않은 거친 시만 쓰게 됐다.

“갑자기 모든 것을 바꾸게 되니 아픔이 뒤따랐어요. 사실 저에게 거친 시는 맞지 않았거든요.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에서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을 시에 고스란히 담아냈어요.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버거웠죠.”

시를 쓰는 것이 고통스러운 시인이라니. 그러나 김 동문은 서서히 깨달았다. 나에게 맞는 시를 써야 모든 고통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시대가 시끄럽다고 시에 고스란히 그 소음만을 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금의 시대상을 나만의 방식으로 담아내자고. 오랜 통증이었지만 그 만큼 성숙한 시가 탄생했다.

문학이 내게 준 감정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순간에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죠. 우리의 삶, 그 근원과 의미를 찾는 과정. 그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문학이에요.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이 있죠.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언어로 풀어나가는 것, 시는 저에게 그런 거예요.”

김 동문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을만큼 책 읽는 것에 몰두한다. 고갱이 그림을 그리며 답을 찾아갔듯이 그녀는 책 속에 파묻혀 끊임없이 생각한다. 나는 왜 고통스러운가, 내 삶 곳곳에 있는 상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녀의 시에는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 담겨있다. 김 동문이 이토록 지독하게 고뇌한 만큼 그 시를 읽는 이도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는 이야기가 있어요. 제 시를 읽고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던 여성분이 있었어요. 그 때 느낀 감동, 그리고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이야기지만 김 동문은 여전히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어느 평범한 날, 어떤 여자가 김 동문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갔다 온 여자였다. 감옥에서 삶에 대한 회의감으로 자살을 결심했던 그녀는 우연히 잡지에 실린 김 동문의 시를 읽었다. 그 시를 읽은 순간 그녀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단다.

“그 이후 여자의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어요. 딸을 살려준 은인에게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부끄럽다면서요. 그 순간 전화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죠. 그리고 그 부녀가 겪었을 고통과 감사의 마음이 온 몸으로 느껴졌어요.”

살면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때가 또 올까. 자신의 글이 이토록 감사하게 읽힌다는 기쁨. 문학은 그녀에게 이렇듯 소중한 감정을 주었다. 마치 그 동안 시를 쓰며 고뇌했던 순간들을 보상하듯이.

결국은, 나를 위한 시
김 동문의 일상은 도서관에서 시작된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가 그녀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대학시절에는 수업에도 가지 않고 소설책만 무작정 읽어댔다. 대학을 졸업한지 30년 가까이 된 지금 김 동문은 여전히 도서관을 찾는다. 이제는 소설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 다양한 형식의 책을 읽는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다보면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책 읽는 그 시간을 가장 좋아하지만, 책을 ‘읽기만’하는 건 스스로를 책 속에 가둬버릴 수 있어요. 그렇기에 책을 ‘잊는’ 시간도 필요해요.”

김 동문은 이따금씩 책은 깨끗이 잊고 음악 감상을 하거나, 미술 작품을 관람하거나 여행을 떠나곤 한다. 시를 쓰기 위한 영감을 구하는 과정이면서도 책 밖의 세상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기르기 위함이다. 상상력은 저절로 솟아나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 솟아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회를 만든다는 것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저 내가 좋은, 나를 위한 것을 찾으면 되니까.

“사실 답은 간단해요. 남들 보기에 좋은 1등이 되려고 하니까 쓸데없이 인생을 허비하게 되는 거죠. 결국 나에게 1등이면 나는 행복한 건데, 그리고 남보다 나에게 1등인 것이 더 의미 있는 건데. 물론 스스로 고뇌할 때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죠.”

(전략)
가로등 스위치를 찾아 죄다 한줌씩 불빛 낮춰버린다
바다에게 가서 강 얘기 하고 강에 가서 기차 얘기 한다
뒤져보면 모래 끼얹은 날 더 많았다 순서란 없다
견딘다

그녀가 말하는 고통은 처음엔 너무나 아프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나의 상심을, 그녀는 똑바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시를 곱씹다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누구나 살면서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내고 벗어나려고 애를 쓰지만, 사실 고통을 위로하는 순서 따윈 없다는 걸. 그저 견디다 보면 어느덧 나는 성숙해져 있고 답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걸.

김 동문의 삶에는 언제나 문학이 곁에 있었다. 문학과 함께 하면서 그녀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얻었다. 시를 쓰면서 자신에게 고통에 대해 물었고, 결국 그 안에서 답을 찾았다. 그녀가 고통에 일일이 아파하는 동안, 어느덧 그녀는 성장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삶은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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