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만 피지 말고 들판으로 나갑시다”
“게으름만 피지 말고 들판으로 나갑시다”
  • 유현지 기자
  • 승인 2010.02.19
  • 호수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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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이상주의자와 동행하는 의미있는 방랑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총 2권짜리 소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 한 번쯤 동화책으로 접한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이라 오인하고 맹렬히 달려드는 우스운 모습뿐일 것이다. 그런 우리로써는 「돈키호테」가 완역판으로는 약 2천 쪽에 육박한다는 사실도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설이 따라붙을 정도로 막대한 독자수를 자랑한다. 우리에겐 어린 시절에 읽었던 짧은 동화책의 한 장면이 소설 전체의 이미지를 장악하고 있는 17세기 소설 「돈키호테」. 수많은 사람들은 「돈키호테」로부터 무얼 느끼고, 무엇에 감동했을까.

우선 세르반테스가 밝힌 「돈키호테」의 집필 의도는 ‘황당무계하고 믿을 수 없는 엉터리 기사소설의 종식을 위해서’였다. 16세기의 당시 스페인 사회는 용맹한 기사 모험담을 다룬 영양가 없는 소설들이 주류를 이뤘다. 당시의 비평가들은 그 조류를 비난했지만 오락을 추구한 대중들의 소설 취향은 쉽게 잠재워지지 않았다. 이에 세르반테스는 대중소설을 잘못 읽고 실성해버린 늙은 시골 양반의 모험담을 통해 황당무계한 기사소설을 풍자하며 주체성 없는 독서를 비판했다. 세르반테스의 힘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기사 모험담 소설은 점차 몰락했다.

하지만 독자들이 세르반테스의 의도대로 단순히 기사소설의 풍자로만 받아들였다면 「돈키호테」는 결코 고전명작으로 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설 「돈키호테」를 해석한 도서 「돈키호테처럼 미쳐?」의 저자 박홍규<영남대ㆍ철학과> 교수는 “돈키호테는 당대의 시대적 변화, 특히 사고 패턴의 변화를 정확하게 반영한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코 풍자소설로 끝나는 소설이 아닌 것이다. 저자의 의도와 독자들의 반응이 다른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18세기 시인 하이네는 ‘천재의 펜은 그 자신보다 훨씬 위대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세르반테스의 펜은 세르반테스 자신이 의도했던 바보다 더 위대한 무언가를 독자들에게 전한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당시 자신의 혈통을 반드시 밝히던 중세의 이데올로기 쯤은 가볍게 무시한 채 소설을 시작한다. 돈키호테가 자신의 이름을 정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인물의 이름을 정하고 여행을 시작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세르반테스는 민중의 흔적이 없던 기사소설을 종식하고 민족의 생활을 표현함으로써 근대소설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는 결코 세르반테스를 무작정 찬미한 결과가 아니다.

돈키호테의 여행은 그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자신의 집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끝을 맺는다. 돈키호테의 죽음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드는 아쉬움 때문에 실망하지 말길 바란다. 돈키호테의 죽음에 산초 판사가 읽는 유언장은 그들의 여행이 결코 무의미한 짓이 아니었다는 점을 증명한다. ‘…이것 보십쇼, 그렇게 게으름 피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들판으로 나가십시다.’

‘한쪽 눈은 웃음으로 찡그리고, 한쪽 눈은 눈물로 가득 채우라’는 말을 남긴 돈키호테의 삶이 아무리 어리석고 한심하게 느껴질지라도 편력기사 돈키호테의 비문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남았다.
‘불굴의 용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던 명예로운 기사가 여기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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