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한대신문 문예상 시 부분 우수상 - 저녁 물가의 축문
제39회 한대신문 문예상 시 부분 우수상 - 저녁 물가의 축문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12.07
  • 호수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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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물가의 축문(祝文)


이 범 근 <사범대ㆍ국어교육학과 04>


가지런히 벗어둔 신발
여기서부터는 길 밖으로 가겠다는 뜻이다

긴 장마의 빗물을 다 받아놓은
구김도 없이 팽팽하게 부푼 저수지
남자의 왼팔이 물속을 떠다닌다
긴 손가락 사이에 여전히 붙들린
담배 한 개비
앵두처럼 살아있는 불
물을 그을리는 불
희뿌연 연기 주위로 모여든 잉어들이
뻐금 뻐금 왼손 끝의 지문을 뜯어먹으며
아가미에 허연 살 오른다
지느러미를 흔들 때마다
물속에도 비릿한 바람이 불고
바닥에서 검은 외투 한 벌 떠오른다
남자의 몸이 빈 자리
물살이 외투를 입고 휘청거린다
결대로 기울어지는 물
몸을 입은 물
천천히 가라앉는 바닥에서
민물 게가 깨진 안경테 속으로 발을 집어넣는다
발자국이 또렷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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