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푹 빠진 게 있다면 ‘블룩’ 하세요
요즘 푹 빠진 게 있다면 ‘블룩’ 하세요
  • 이다영 기자
  • 승인 2009.12.06
  • 호수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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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룩, 소극적 독자에서 주체적 필자로 향하는 길목
한양이는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국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행기를 썼다. 각 지방의 사람들과 문화를 찾아다니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몇 달 전에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이어리에 정리하다가 문득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블로그에 올렸다.

그러자 전국의 누리꾼들이 조언과 부러움이 담긴 댓글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찬찬히 훑어보며 그간의 글들도 연재를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출판사에서 책을 내 보지 않겠냐는 메일을 받았다.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 한양이는 누리꾼들의 성화 속에 여행기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블로그(blog)의 내용을 책(book)으로 엮어낸 ‘블룩(blook)’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실용서 「2천원으로 밥상 차리기」로 본격적인 블룩 문화가 시작돼 화장ㆍ여행ㆍ요리 등 주로 실용ㆍ취미 분야로 퍼져나갔다. 이어서 한 주부의 육아 블로그를 책으로 엮은 「예성맘의 우리아이 10년 밥상」과 「예성맘의 우리아이 평생밥상」은 6만 부 이상 팔리기도 했다.

한편 문화 전문 블로그 ‘문화의 제국’을 운영하는 김홍기 작가는 작년 「샤넬, 미술관에 가다」에 이어 올해 「하하 미술관」을 내 각각 1만 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작은 탐닉’ 시리즈는 골목, 편의점, 길고양이 등 소소한 일상을 파고든 블로거들의 시리즈물로 20여 권이 출시돼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인문학 서평을 주로 다루는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 운영자 이현우 작가의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블룩이 전문분야로 발을 넓히는 지평을 열었다.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대학 강단에서 비정규직이 3분의 2를 차지하는데 이중에서도 절반이 연봉 990만 원 미만”이라며 “강단의 전문가들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느라 글을 쓸 시간이 없고, 간혹 논문을 쓴다 해도 대중이 읽을 만 한 글은 잘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래서 요즘 출판사는 블로그를 뒤져 책을 낼만한 필자를 물색한다”며 “강단의 전문 작가들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에 대체 필자의 생산으로 보면 된다”고 분석했다. 이런 블룩 문화의 확산은 학생, 백수, 주부 등 다양한 계층을 작가로 거듭나게 했다. 따라서 출판의 권력구조 또한 재구성되기도 했다.

주로 수용적 역할을 맡던 기존의 독자가 필자로 재탄생하면서 적극적 생산자이자 유통자로 변모한 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또 작가가 출판사에게 선택받기 위해 애쓰고 출판사의 재량으로 책을 펴내며, 독자는 그것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출판의 순서도 변화를 겪고 있다. 블로거가 글을 올리면 인터넷 상의 독자들은 직접 의견을 피력하고 반영되며, 이것이 출판사의 섭외를 받는 새로운 절차가 자리잡았다.

미술치료 블룩 「하하 미술관」의 황인석<미래인> 편집장은 “온라인 매체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블로그 발굴 또한 새 필자를 찾는 유효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며 “자발적 참여와 공유의 장인 블로그에서는 기존 표현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사적인 영역에 관한 과감한 발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독자들의 댓글 피드백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충, 수정, 첨삭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일부 인기 블로거들의 경우 기존 유명 저자들 못지않게 출판사 간 섭외 경쟁이 치열하다”고 귀띔했다.

이밖에도 블로그는 소비자ㆍ독자 친화적인 콘텐츠로 독자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간다. 주로 취미ㆍ실용 분야의 블로거들이 성공을 거둔 이유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하루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블로그 방문자 수에서 시장성이 검증되며 아마추어 블로거를 통해 판권의 단가 또한 낮출 수 있는 점을 블룩의 매력으로 꼽는다.

몇 달 전에는 황석영이 소설 「개밥바라기별」의 인터넷 연재에 성공해 “컴퓨터를 통해 변화된 언어 세계를 받아들여 문학과 인터넷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밖에도 최근엔 인터넷 연재만화 ‘웹툰’과 판타지 소설 단행본 등 인터넷의 콘텐츠 자체가 출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블룩은 출판 고유의 비즈니스가 새로운 진화를 거듭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블로그 시장을 개척했다고 해서 모두 성공적인 출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황 편집장은 “블로그에는 아무래도 아마추어 필자가 많아 작문 능력이나 지적인 훈련도에선 뒤쳐지고 기존 정보의 짜깁기에 불과한 경우가 많으며 내실보다는 방문자 수 등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를 선별하는 출판기획사의 섬세한 시각과 치밀한 기획, 마케팅 전략이 더욱 요구된다"고 블로그 작가 발굴의 한계를 토로했다.

실제로 블룩은 댓글과 트래픽을 통해 한 사람의 생각을 쌍방향으로 잇고 그 진전을 이루는 측면이 있지만 도서의 질적 측면에 있어선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한 소장은 “원고지 50매 정도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면 ‘이렇게 긴 걸 누가 읽냐’는 댓글이 달리기 일쑤”라며 “블로그는 그 때 그 때의 재미를 원천삼아 사람을 끌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이로써 짧은 호흡과 마니아적 취향이 나타나고 사상적으로 깊은 사유는 어렵다”며 “아직까지 재미와 오락이 주가 되는 대다수의 블룩에서 학문적 가치를 논하긴 힘들다”고 전했다. 그 전문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직면한 것이다.

블룩이 이에 부응하기 위해선 인터넷 상 독자들의 비판적이고 전문적인 시선이 담긴, 보다 적극적인 피드백이 요구된다. 한 소장은 “아날로그는 물론 대중매체 역시 쓰러져가는 판국에서 전문가 역시 블로그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정체성 유지에 필수적”이라며 “그들 또한 대중적 글쓰기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전문성을 어필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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