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대중과 함께해온 분식
오랜 세월 대중과 함께해온 분식
  • 문종효 기자
  • 승인 2009.11.22
  • 호수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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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서민음식에서 세계인이 즐기는 음식으로

매년 이맘 때 언 손을 비비며 거리를 거닐다 보면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다. 어느새 우리의 일상에 자리한 거리의 분식들이 그것이다. 언 속을 데워주는 따듯한 어묵과 매콤한 떡볶이, 바삭바삭한 튀김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으레 가던 길을 멈추고 분식집에 들르곤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붕어빵, 군고구마, 호빵, 타코야끼 등의 무수한 길거리 분식들은 입맛이 떨어진 사람들의 식욕을 돋우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김태형<경영대ㆍ경영학과 08> 군은 “가격이 저렴하고 눈에 자주 띄어서 평소 분식을 즐겨먹는 편”이라며 “주로 간식용으로 먹기 때문에 출출할 때 먹기에 좋다”고 말했다.

긴 세월이 흘러 대중에게 전해진 분식

분식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뜻하는 말로 원래 빵, 만두, 라면, 떡 등에 사용됐던 용어였다. 하지만 점차 그 의미가 변해 요즘은 저렴한 값에 파는 음식들을 분식으로 부르게 됐다.

물론 분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김태리<세계음식문화연구소ㆍ푸드biz팀> 연구원은 “삼국시대 서동이 남의 나라에서 마를 들고다니면서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며 “이는 오늘날 흔히 말하는 길거리 음식의 기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근대에 접어들어 저잣거리가 생겨나면서 엿과 떡, 막걸리 등이 거리에서 팔려나갔다”며 “이밖에도 시골 장터에서 말아먹는 국밥과 장터국수 등은 길거리 음식의 원조”라고 전했다.

이후 해방이 되면서 분식은 싼 값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특성 때문에 쌀이 부족하던 1960년대 박정희 정부에 의해 장려되기도 했다. 당시 식량이 부족해 밥을 거르곤 했던 우리 국민들은 분식에 열광했으며 이로 인해 분식문화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분식 특유의 접근성과 편리성, 가격의 비교우위는 분식의 대중화를 급속도로 진전시켜 1989년에는 서울에서만 2000곳의 분식집이 생겨났을 정도로 호황을 이뤘다. 이후 점차 감소하는 듯 했지만 IMF 위기 등의 경제난 속에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이렇듯 전 국민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가벼운’ 음식들이지만 이들의 역사는 결코 가볍지 않다. 분식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떡볶이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국민음식이지만 본래 상류층만 먹을 수 있는 진귀한 음식이었다. 떡볶이는 고추장이 없던 조선 초기 때부터 존재해왔으며 떡에 간장을 잰 쇠고기와 각종 야채를 볶아서 만들어졌다. 당시 이 음식은 영양가가 높고 맛이 좋아 임금과 극소수 선비들밖에 맛볼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매운 맛을 지닌 고추장 떡볶이는 1950년 신당동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양향자<세계음식문화연구소> 소장은 “1953년 문을 연 마복림 할머니의 떡볶이 가게에서 최초로 고추장 소스를 이용한 떡볶이가 등장했고 이것이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분식인 순대 역시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동물의 창자 속에 여러 재료를 소로 넣어 삶은 음식인 순대는 일찍이 중국의 고서인 제민요술에서도 만드는 방법을 서술해놓고 있을만큼 오래전부터 그 영양가를 인정받아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추운 북부지방에서 주로 생산됐다.

겨울철 주요 분식중 하나인 호떡은 고려 속요 「쌍화점」에서 회회아비(이슬람인으로 추정)가 팔았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또 기름에 각종 식재료를 튀기는 튀김은 포르투갈 선인들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다가 조선에 알려졌다고 전해진다. 이외에도 적지 않은 길거리 음식들이 적지 않은 세월을 지나 오늘날까지 존속해왔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분식

다른 문화들이 그렇듯 분식도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요동쳐왔다. 분식의 태동기인 50년대는 떡, 만두, 빵 등이 주요 분식이었다. 특히 1963년 대구 동성로에 문을 연 분식점의 효시 ‘미성당’은 전국에 만두 붐을 일으키며 분식문화를 전파하는 진원지가 됐다.

이후 매운 맛을 앞세운 신당동의 떡볶이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떡볶이가 분식의 주요 음식으로 부상했다. 또 70년대의 신당동 떡볶이 골목 이외에도 90년대 신림동 순대타운 등의 먹자골목이 등장하면서 ‘분식 명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겨울철 입맛을 사로잡는 오뎅, 호빵, 호떡, 붕어빵, 군고구마 등이 길거리음식으로 정착돼 국민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시기부터였다. 김상규<세븐일레븐ㆍ운영부> 씨는 “매년 겨울 출시되는 호빵과 오뎅의 판매량은 점포 전체 매출액의 5%가 넘는다”며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이런 음식들이 매출에서 이정도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 사회적 구성원이 다원화되고 국민의 입맛이 다양화됨에 따라 분식 업계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타코야키, 핫바 등 외국에서 온 분식들이 대중의 입맛에 맞게 적절히 변형돼 출시됐으며 계란빵, 가래떡 구이 등 기존의 음식을 길거리 음식으로 발굴됐다.

기존의 길거리 분식들도 새롭게 단장해서 출시되고 있다. 분식의 대표주자 떡볶이는 맛과 재료가 새롭게 조합돼 출시되고 있으며 순대는 튀김으로 새롭게 변신해 인기를 끌고 있는 양상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맛의 소스를 넣은 붕어빵이나 찹쌀을 섞은 잉어빵, 군고구마와 치즈를 결합한 치즈 군고구마 등이 대중의 입맛을 충족시키고 있다. 

어묵도 다양한 맛의 재료를 섞어 새롭게 개발돼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떡볶이 국물에 어묵을 집어넣어 맛을 낸 빨간 어묵을 비롯해 오징어 어묵, 고추 어묵, 치즈 오뎅 등이 대표적 사례다. 김 씨는 “최근 어묵 안에 스프를 넣는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며 “어묵을 넣고 끓일  때 스프 맛이 우러나 보다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회적으로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선호하는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저칼로리 분식들도 등장하고 있다. 칼로리를 낮춘 붕어빵이나 기름기를 뺀 호떡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아무리 영양가를 높였다고 해도 분식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 신원선<생활대ㆍ식품영양학전공> 교수는 “분식은 반찬을 먹지 않게 되므로 탄수화물 섭취만 과도하게 이뤄진다”며 “분식을 먹을 때는 샐러드와 같이 먹거나 고기, 두부 등을 섭취해 영양분을 보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산업으로 다시 태어난 분식

분식의 위상 변화도 눈여겨봄 직 하다. 과거 분식 산업이 영세한 규모로 운영됐다면 최근의 분식점은 패스트푸드점처럼 대형화되고 기업화되는 추세다. 왕십리 거리에서 분식 체인 ‘빠사시’를 운영하고 있는 위성훈<서울시ㆍ성동구 50> 씨는 “프랜차이즈 분식점은 본사에 어느정도 로열티를 내긴 하지만 분식 노하우나 기타 물건을 지원받기 때문에 용이한 점이 있다”며 “고객도 인지도가 있는 분식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 음식 한류의 첨병으로 분식인 떡볶이가 선정되는 등 분식의 국제화도 진전되고 있다.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해 ‘한국 쌀가공식품 협회’에서 설립한 ‘떡볶이 연구소’는 다양한 종류의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상효<떡볶이연구소> 소장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맛을 재현하기 어려운 김치찌개와 불고기와는 달리 떡볶이는 떡과 소스, 야채만 넣으면 언제나 같은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를 능가하는 파급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다양한 모양과 맛을 지닌 떡볶이를 개발중에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 할인마트 등 분식점이 아닌 곳에서도 분식을 취급하는 점 또한 주요 특징으로 꼽힌다. 김 씨는 “기존의 오뎅, 호빵, 꼬치햄, 레토르트 떡볶이, 햄버거 등 분식점과 패스트푸드점의 기능을 동시에 갖춘 게 편의점”이라고 말했다.                     

사진 박효은ㆍ최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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