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외면했던 이슬람을 끌어안다
모두가 외면했던 이슬람을 끌어안다
  • 안원경 기자
  • 승인 2009.09.19
  • 호수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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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이슬람 분야 개척한 이희수<국문대ㆍ문화인류학과> 교수

이희수<국문대ㆍ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이슬람 연구 분야에선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의 연구실에 들어서자 수많은 이슬람 관련 서적들은 어떻게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됐는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어떻게 그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게 됐을까. 평범하지 않은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 봤다. 

 

이슬람, 너는 내 친구
이 교수는 독특한 집안 환경에서 자랐다. 우리나라에서 ‘서학’이라 불렸던 가톨릭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집안이었다. 반면 이 교수의 아버지는 유학을 철저하게 공부하신 분으로 제사와 효를 강조하셨다. 이런 집안 배경 덕에 그는 두 종교를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다. 타지로 중학교를 진학한 그는 부모님과 떨어져 절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이 교수는 스님과 함께 불경도 공부하고, 불교의 절제된 생활도 경험할 수 있었다.   

“저는 어렸을 때 다양한 종교를 접할 수 있었어요. 종교를 직접 체험해 보면서 종교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고 느꼈죠. 저와 다른 생각,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것도 어렸을 때 직접 경험하면서 배웠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진학 이후 하숙을 하게 된 그에게 주어진 자유는 너무 달콤했다. 그 덕분에 이 교수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고 재수, 삼수 이후에야 한국외대 터키어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터키어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서너살어린 동생들과 같이 어울리기는 힘들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심각한 고민에 빠졌어요. 제가 남들과 같은 길을 가면 저는 항상 3,4년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철저히 버려지고 남들이 싫어하는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선택한 것이 중동이었어요.”

오일 쇼크 이후 사람들은 중동과 아랍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종교를 접한 이 교수에게 이슬람은 보호의 대상이자 호기심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이슬람, 너는 내 친구야. 내가 따뜻하게 보살펴 줄게.’


터키유학으로 다시 시작된 인생
이 교수의 이슬람에 대한 지식은 이미 대학생 때 국내에서는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학생신분으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중동에 대해 연구하고, 국제 정세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우리말로 번역된 연구서도 없었고, 이슬람 국가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줄 교수도 없었다. 이 교수는 원서를 직접 들여와서 혼자 공부해야 했다.

“교수님께서 수업을 하시는데 맞는 말이 하나도 없었어요. 이미 지나간 얘기를 하고 이슬람에 대해 왜곡된 정보만 말하셨죠. 제가 자꾸 질문을 하고 이의를 제기하니까 교수님께서  수업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수업도 출석안하고 A를 받은 독특한 학생이었어요.”

이 교수는 국내에서는 중동과 이슬람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그에게 미국 유학의 기회가 왔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쉽게 떠날 수 없었다.  터키와 한국의 국교 협정 이후 이 교수에게 다시 한번 터키 유학의 기회가 찾아왔다. 1982년 터키와 한국의 문화교류 협정으로 터키 국비 유학생의 자격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터키 국비 유학생 선발 시험을 보러갔는데 지원자가 저 혼자였어요.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거죠. 많은 사람들이 미국행 비행기를 탈 때 저는 그 반대편 비행기를 탔어요. 그 때 부터 저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어요.”


유학시절의 웃지못할 추억
그가 처음 터키에 갔을 때, 이 교수는 600만 명이 사는 이스탄불의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550년 역사를 가진 이스탄불 대학교에서는 최초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아무리 학교를 돌아다녀도 화장실이 없었어요. 처음 6개월 동안은 학교에 있는 화장실을 못 찾아서 버스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집까지 매일매일 화장실을 다녔죠. 근데 친구들을 따라 ‘100’이라고 써진 곳으로 들어는 걸 보고 따라가니까 그 곳이 화장실이었어요.”

터키 재래식 화장실에는 발을 올릴 수 있는 둥그런 대리석 두 개 있는데 이 모양을 따서 모든 층의 100호는 화장실이다. 터키의 오래된 건물에는 화장실 표시가 없고 홀수 층에는 여자화장실이, 짝수 층은 남자화장실이 있다. 터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이라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슬람 문화를 공부해온 이 교수였지만, 그 역시 사소한 문화 차이 때문에 당황스러운 일도 많았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익숙해질 수 있었다. 심지어 잠꼬대까지 터키어로 할 정도였단다.


이슬람 전문가를 원하지 않았던 한국
이 교수가 터키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다시 한국에 돌아올 당시, 이 교수를 채용한다는 대학은 어느 곳도 없었다. 여전히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인식은 낮았고 교양강좌로도 이슬람 관련 강좌는 개설되지 않았다.

“당시 지도 교수님께서 아직까지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냐고 물어봤을 때 한국에서는 절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대답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교수님과 학장님은 한국 출신 전공자가 한명 밖에 없는데 부르는 곳이 없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시더군요. 한국 대학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하셨죠.”

그 후 이스탄불 대학에서 그를 채용했고, 이 교수는 이스탄불에서 동양인 최초 교수가 됐다. 한국인 교수가 터키어로 터키학생에게 터키의 역사를 가르치는 독특한 강의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단다.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5년 동안 실업자 신세였다. 정부에서는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전공자에게 월급을 주고 사립대에서 강의를 하는 제도를 마련했고, 그는 한양대 교단에 설 수 있었다. 
 

“아무도 저를 선택해 주지 않는다는 건 절망의 연속이었죠. 저는 제가 좋아하는 분야이기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사회에 꼭 필요한 학문이라고 여기고 있었거든요. 결국 한양대가 저를 선택했고 93년부터 지금까지 한양대에 몸담고 있어요.”

친구로 받아들여야할 이슬람 
9.11테러 이후 이슬람 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사람들은 이 교수를 찾기 시작했다. 현재 지금 이 교수는 중동학회 회장, 세계학술 대회국제기구의장까지 맡고 있다. 

“이제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 없이는 국제 정세를 논할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그 뒤로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죠. 지금 국제 관계 관련 공무원부터 사법 연수생, 최고 경영자과정을 공부하는 학생들까지 제 수업을 필수로 듣고 있어요.”

이 교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슬람을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친구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뜻이다.

“한국의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는 저를 두고 한국에 이슬람교를 퍼트리기 위해 중동에서 보낸 스파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이 교수는 한국 사회가 아직도 낯선 종교와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에 서투르다고 말한다. 이슬람의 교리에서도 우리가 받아들여야하는 것이 있다고.

“사회로부터 축척한 부를 이웃과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이슬람의 정신은 한국 사회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저 낯설다고 기피하기보다 다른 점을 이해하려는 마음만 갖는다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요.”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
이 교수는 30년간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안 가본 곳은 남극과 북극뿐이란다. 수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그가 얻은 교훈은 여행은 힘들고 치열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여행을 꿈꾸는 대학생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젊음’을 가진 지금, 편한 여행지보다는 힘든 오지 여행을 가라고 조언한다.

“유럽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갈 수 있어요. 그곳은 변하지 않고 몇 년 후에도 있을 테니까요. 지금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남미나 아프리카의 오지로 떠나 그 곳을 영원히 기억에 남기세요.”

10년 뒤의 사회를 예상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한다는 그에게 젊었을 때의 열정이 여전히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외면했던 이슬람을 끌어안은 넓은 마음, 그리고 아무도 가지 않은 오지를 개척한 치열한 정신을 가진 그에게는 어떤 도전도 두렵지 않을 듯 싶다.    
 
사진 박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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