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애를 넘어선 진실 됨의 중요성
가족애를 넘어선 진실 됨의 중요성
  • 권경하 기자
  • 승인 2009.09.13
  • 호수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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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대행소의 아름다운 사람들 「나무는 서서 죽는다」
한양극예술연구회 '들꽃'
우리는 현대사회 속에서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그 예다. 그동안 ‘나’만을 위한 여행을 위해 정작 가장 가까웠던 가족에 대한 애정엔 소홀하지 않았나. 이번 공연을 보고 나서부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우리의 진실을 표현해보자.

올해로 34년째 전통을 이어온 한양극예술연구회 ‘들꽃’의 정기공연 「나무는 서서죽는다」는 평범한 듯 야릇하게 꾸며 놓은 역할대행소 사무실에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곳은 절망에 빠졌던 사람들을 가짜 광대와 어부등의 역할로 교육시킨 뒤 또 다른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기억과 영혼을 다시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선단체다. 판타지적 장소를 삽입시킨 이 부분은 ‘우리 삶속에도 이런 역할대행소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상상력을 키워준다. 어쩌면 원작자는 미래에 황폐해질 인간의 감성을 위로해주기 위한 예언을 했던 건지도 모른다.

어느 날 이곳엔 똑같은 주소가 적힌 봉투를 든 젊은 여인과 늙은 할아버지가 초대된다. 이 둘은 사무실의 소장이 초대한 것으로 젊은 여인은 전날까지도 절망에 빠져 삶의 의욕을 잃고 있었다. 소장은 혼자였던 여인에게 관심을 표현함으로서 그녀를 절망 속에서 구해냈다. 반면 할아버지의 소원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녀의 마지막 소원인 손자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소장이 손자 역할을 대신하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20년 전, 방탕한 손자의 모습에 화가나 손자를 집에서 내쫓았다. 할머니는 항상 손자를 걱정 했고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던 할아버지는 지난 20년간 할머니에게 손자인척 거짓 편지를 보냈다. 할머니는 거짓 편지 속에서 듬직해진 손자의 모습들을 접하며 손자의 잊혀진 20년 전의 기억을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도록 그 때의 모습 그대로 집을 간직해왔다.

이번 연극을 연출한 남영규<공대ㆍ생체공학과 05> 군은 “기준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행복의 모습이 궁금했다”며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행복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진실이 있다면 행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쇠약해진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뭉친 사람들의 할머니를 향한 진실 된 마음은 통했다. 그렇기에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눈 앞에 20년 만에 나타난 손자가 가짜임을 깨 달은 후에도 그들에게로 부터 자신이 받은 행복을 되돌려주려 했다.

왜 원작자는 「나무는 서서 죽는다」라는 제목을 지었을까. 사실 연극을 보는 내내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 지 쉽지 않았다. 할머니가 진짜 손자의 존재를 알면서도 모른 척 자신이 거짓을 마음 속 깊이 품고 마지막을 맞이하는 모습은 흡사 나무의 굳은 기둥과 사시사철 비바람을 맞으며 이겨내는 모습과 닮았다.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며느리에게 집안 전통술 제조법을 설명하는데 이는 진정 할머니에게 필요했던 사람은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또 나무는 죽는 순간까지도 편히 쉬지 못하고 서서 죽는다는 점을 할머니의 손주를 향한 지난 20년간의 희생적인 모습을 비유했던 것이다.

사진 최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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