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한가락 미소 가득한 목월의 고향, 경주를 찾다
시인 박목월 선생이 쓴 「사향가」의 첫 행이다. 경주, 화려한 역사만큼이나 찬란한 문화유산이 남아있는 그곳에 도착하고도 시와 함께 밀려오는 적막함이란. 목월 선생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경주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목월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그의 고향인 경주에 이른 아침부터 발을 디뎠다. 그가 말했던 유구한 역사들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많은 세월을 견뎌내고 있었다. 타향서부터 목월 선생이 느꼈을 고향의 대한 그리움들을 회상하면서, 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이 곳의 분위기를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목월 선생은 시에서 ‘경주’라는 지명을 계속해서 언급하며 그의 고향을 향한 동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에게 경주는 물리적인 공간을 뛰어 넘어 이상적 안식처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의 시는 해방 이후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발버둥 치던 하나의 몸짓은 아니었을까. 단순히 그에 대한 향수뿐 아니라 그 당시 어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버스에 몸을 싣고 불국사로 향했다. 은은한 말씀을 머금고 있는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있자니 그가 말했던 이 곳의 모습을 마음 속에 모두 담아가야 할 것만 같다. 그는 시 「불국사」에서 불국사를 한 폭의 동양화처럼 표현했다. 우리의 눈 앞엔 그 모습 그대로인 자하문과 대웅전이 펼쳐져 있다. 자하문 앞에서 사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말했던 불국사의 모습은 고요하고 적막한 곳이었는데 지금 이곳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관광지다. 흰 달빛이 자하문을 비추는 고요한 모습을 상상했던 터라 밝고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 찬 자하문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달안개와 물소리가 들리는 대웅전에 있는 큰 보살의 미소가 온화하다. 대웅전 앞에는 그 웅장함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앞에 공사 중인 다보탑은 현대의 옷을 새롭게 입고 곧 모습을 보일 거라 한다.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인 다보탑의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그 모습이 기대된다.
대웅전의 큰 부처상이 세상 근심을 다 들어줄 것 같은 모습으로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 뒤에 있는 큰 절에는 부처에게 기도를 비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꼬마의 운동화부터 중의 고무신까지 절 입구엔 많은 신발들이 놓여있다. 그들은 무엇을 그리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일까. 각자의 마음 속 소망, 가족의 건강 혹은 자녀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는 것일까.
불국사에서 600미터 정도 걸어 가다보면 목월 선생과 동리 선생을 기리기 위한 ‘동리목월 문학관’이 자리 하고 있다. 목월 선생이 남긴 전반적인 문학과 이곳에 서린 그를 느끼기 위해 문학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곳에는 그의 초ㆍ중ㆍ후기 시 변화부터 한양대 재직시절까지 그의 일대기가 담겨있다. 그가 쓰던 원고지와 펜부터, 그를 추억할 수 있는 물품과 시까지 이곳을 찾는 이에게 목월 선생을 향한 충분한 향수를 불러온다.
문학관을 나와 목월 생가를 찾아가는 버스 안에서 밖을 내다보니 넓은 들판과 꽃밭이 눈에 띈다. 그 곳의 풍경은 우리의 발길을 절로 멈추게 했다. 안압지는 신라 문무왕 14년에 만들어져 아름다운 꽃, 그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놀이동산처럼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지났던 곳이다. 지금도 그 아름다움에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리저리 어디를 보아도 한 폭의 그림 같은 그곳을 사진에 담지 않고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안압지는 임해전과 크고 작은 세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임해전과 연못 주위는 이를 밝혀주는 환한 불빛들 때문에 저녁에 그 모습이 더 아름답다. 그 옆에 서서 보니 안압지야 말로 경주를 한 곳에 모아놓은 곳이 아닌가 싶다. 500년 전에 그랬듯 지금도 곳곳에서 묻어나는 그 품격과 고고함에 천천히 거닐수록 마음이 고요해짐을 느낀다. 목월선생도 마음이 답답할 때면 신라 천년을 떠올리며 이곳을 걷곤 하지 않았을까.
그의 발자취를 좇아 목월 선생의 생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생가가 있는 모량리에 내려 이정표가 보일 때까지 그저 걷고 또 걸었다. 목월 선생의 생가까지는 많은 논 밭 그리고 기차가 지나다니는 철도길이 보인다. 그가 쓴 시 「나그네」가 걸어 갈 것만 같은 외줄기의 길도, 또 그 나그네가 길을 걸으며 봤을 것 같은 타는 저녁놀도 역시 눈앞에 펼쳐진다. 이 광경 앞에서 자연과 하나 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목월 선생의 보편적이면서도 자연스런 감정 표현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그의 집이 가까워질수록 유유자적한 나그네의 모습이 절로 떠오르는 풍경, 그 자체다.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그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그의 태도는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둑해져서야 목월 선생의 생가 앞에 다다랐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에 가려 그의 생가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에 덩그러니 놓여진 그의 생가가 외로워 보인다. 그의 생가라는 이 곳에는 친인척도 아닌 누군가가 살고 있다한다. 우리가 정작 느끼고 싶었던 건 그의 발자취를 좇아온 이 길의 풍경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발걸음을 경주역으로 재촉한다.
짧았던 하루의 경주 일정을 마치고 떠나기 전, 다시 한번 경주역을 돌아본다. 오전의 경주역에서 느꼈던 적막함이 다시 밀려온다. 경주역 뒤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둥근달이 그 적막함을 달래보려고 애쓴다. 적막한 밤이 다가오자 경주 아래 있는 목월 선생의 흔적들이 달과 마주한다.
글ㆍ사진 이유나ㆍ박효은ㆍ최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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