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쾌락을 찾기 위한 엄마의 여정 - 영화「엄마의 휴가」
진정한 쾌락을 찾기 위한 엄마의 여정 - 영화「엄마의 휴가」
  • 문종효 기자
  • 승인 2009.09.07
  • 호수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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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의 반려자가 내가 아닌 사물들과 사랑에 빠진다면? 황당하리만큼 어이가 없는 이 질문을 재밌게 풀어낸 영화가 있다. 바로 미장센단편영화제 출품작이자 베니스국제영화제 단편부문 초청작 「엄마의 휴가」다. 이 작품에는 우리학교 임지현<예술학부ㆍ연극영화과 07> 군이 주연으로 출연해 숟가락의 정령을 연기했다. 임 군은 “평소 독립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연기자를 모집할 때 지원했다”며 “이렇게 큰 영화제까지 나가게 돼 매우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22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전개되는 이 영화는 성생활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 채 가족들을 뒷바라지하는데 전념해온 주부 은옥이 우연히 집안 사물들의 정령을 만나 처음으로 쾌락을 느끼고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는 초반에 은옥이 사물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오르가즘을 느꼈다고 자랑하는 딸과 그런 모습에 대견함을 느끼는 아빠 사이에 그 뜻조차 제대로 모르는 엄마의 존재는 더 이상 담론의 주체가 아니다. 하지만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심지어 아내까지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딸과 남편에게 그녀는 그저 마루와 바닥, 숟가락과 창문을 닦는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결국 엄마는 다른 방법으로 성적 만족을 느끼게 된다. 그녀 앞에 나타난 유리창, 소파, 바닥, 숟가락의 정령은 그녀와 공감해주며 쾌락의 절정까지 가도록 돕는다.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그녀의 들뜬 몸짓과 목소리에서 그녀가 얼마나 쾌락을 원해왔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엄마의 휴가」는 쾌락에서 시작해 쾌락으로 끝나는 영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민망하지 않은 이유로는 ‘성’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집안 사물들을 이용해 재미있게 표현한 작가의 재치나 의도적으로 과장된 연기로 조롱거리로 전락한 가족들의 모습, 그리고 ‘정령’이라는 판타지적 소재를 끌어들인 점을 들 수 있다. 또 벌거벗은 장면 없이 성에 대한 비유만으로 영화의 주제를 살려냈다는 점만으로도 외설영화들과는 구분된다.

아직 한 가지 의문점이 남아있다. 엄마는 어디로 가버렸는가. 영화는 이 질문의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않는다. 단지 영화 내에서 몇 가지 단서만 제시할 뿐이다. 우선 밤이 되면 사물들이 비춰지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와 함께 후회감에 몸을 사리는 아빠의 모습도 그려진다.

영화는 끝을 성적 쾌락만으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잠시 쉬고 싶다’는 그녀의 편지는 우리로 하여금 그녀가 더 이상 가사일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이는 영화 끝부분에 아빠와 딸이 집안일을 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엄마가 있다. 그들이 그토록 무시하고 괄시해왔던 엄마가 너무나도 편안한 얼굴로 춤을 추고 있다. 그렇다. 그녀는 진정한 쾌락을 찾은 것이다.

엔딩에서 알 수 있듯 그녀가 찾은 쾌락은 성적인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만두와 떡볶이를 시켜 먹는 것을 상상하고 자신의 어린 모습을 회상하며 기뻐하는 엄마는 분명 잊고 있었던, 가정 일에 전념하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순수한 쾌락들을 떠올렸으리라. 곧 휴가에서 돌아올 엄마는 우리에게 권할 것이다. 휴가를 떠나라고, 잊고 살아왔던 지난 순수를 찾으라고.
문종효 기자 answhdgy@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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