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문화위에 우뚝 서기를…
프리즘 문화위에 우뚝 서기를…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05.24
  • 호수 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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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호<안산 사회봉사단> 과장

“한대신문”의 나이가 어느 덧 50살이 됐다. 지금의 제호가 “한양대학보”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양대학보라고 표기를 해야겠지만 50년의 긴 세월 중에 6년의 세월을 기자와 편집간사로 지냈던 필자로서는 그때 사용했던 “한대신문”이라는 제호가 더 정겹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편하게 한대신문이라고 표기를 하는 것이다.

필자가 신문사 생활을 하던 시기는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가장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80년대 전·노로 이어지는 군부의 독재정권이 이 땅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다. 캠퍼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와 탄압이 반복됐고, 꽃향기 그윽하게 퍼져야 할 5월에도 매캐한 최루탄 냄새만이 가득했다. 결국 80년대의 대학의 화두는 민주화였고, 이에 문화도 저항과 저항이 아닌 문화로 양분됐다. 우리는 이러한 양분된 문화를 흑백문화라고 불렀다.

어느 것이 흑이고 어느 것이 백인지는 몰라도 저항문화를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저항에 관련된 것이 아닌 것은 상당부분을 퇴폐 혹은 저질문화로 간주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한대신문도 마찬가지였다. 1면부터 8면까지 저항에 대한 기사로 가득했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는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시도를 다양한 각도에서 투영해보기도 했다.

적어도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초반의 대학의 화두가 민주화였기 때문에 한대신문의 이러한 시도를 많은 독자들이 공감을 하면서 즐겨보았고, 비평을 아끼지 않았던 것 같다.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군부정권이 무너지면서 대학의 문화는 흑백에서 다양한 컬러를 내는 문화로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저항과 저항 아닌 것에 대한 이분법적 갈래에서 벗어나 정말로 다양한 장르의 문화가 대학 곳곳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들이 제대로 클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체계적인 준비 작업이 부족했던 것 같다. 때문에 2002년부터 안산캠퍼스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문화를 “프리즘 문화”라 칭하고 이것이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프리즘 문화”는 한 줄기의 빛이 프리즘을 지나면 무한한 색깔을 띠는 것처럼 흑백의 색깔이 이제는 다양한 색채로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에 만든 총체적 개념이다. 그 안에는 저항, 힙합, 문학, 예술, 놀이 등 모든 것이 공존한다. 또한 어느 한 장르가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문화의 일부분이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대학이 가진 독특한 문화를 완성시켜 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프리즘 문화”는 완성된 것이 아니다. 대학문화가 과거 60~70년대 청년의 문화를 이끌었다면 지금은 일반 대중문화에 끌려 다니는 형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학만의 독특한 문화가 아직까지는 형성돼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 한대신문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의 한대신문은 1면부터 12면까지 읽을거리가 많고 재미가 있다.

독자가 외면했던 과거 몇 년에 비해 괄목상대할 만큼 다양한 컬러로 지면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점차 신문이 독자의 관심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다시 말해 독자와 신문이 같은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신문이 프리즘 문화를 완성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다양한 기획과 개발로 지면을 채워나간다면 대학은 청년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장소로 자리매김할 것이고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함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제 지천명의 생일을 맞은 한대신문에게 프리즘 문화위에 우뚝 서기를 다시금 주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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