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내 안에 들어갔다 나온 세상”
“소설은 내 안에 들어갔다 나온 세상”
  • 이시담 기자
  • 승인 2009.05.24
  • 호수 12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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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언어로 글쓰는 소설가 천운영<신문방송학과 94> 동문

그녀의 소설은 강렬했다. 그 속에는 많은 인물이 숨 쉬고 있었지만 다들 너무나 독특해 혼동할 수 없었다. 각기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며 웃는 모습마저 다른 이들이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과연, 이 세계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특별했다. 

내가 소설 쓰는 게 옳은 걸까 

“내가 소설이 쓴다는 게 옳은 것인지 많이 고민해요. 하지만 소설을 써야만 그런 고민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천 동문은 소설 <바늘>로 문단에 강한 인상을 남기며 등단했다. 그 뒤로도 발표하는 작품마다 주목을 받았고 올해 ‘이상 문학상’까지 수상했다. 이렇게 소설가로서 인정받고 있는 그녀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천 동문의 소설에는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이 아닐까. 그 인물들은 엄마를 닮기도 했고 이웃 아주머니를 닮기도 했으며 친구를 닮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 주변에는 원성이 자자하다. 

 천 동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단면까지 보여준다. 그러나 천 동문은 그것을 전혀 추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추악하고 미운 사람을 그리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천 동문의 소설 속에는 제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 부딪히며 목소리를 낸다. 그렇기에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잡힐 듯 말 듯한 그 욕망을 잠시라도 잡아야만 한다. “잡았다가 사라질지언정 그 무엇인가를 잡는 순간의 촉감과 찰나의 기쁨이 다시 한 번 뭔가를 잡을 수 있는 원동력이 돼요”

 천 동문은 “결국 소설은 내 삶 자체고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라며 "내가 바라는 궁극적인 것은 내 삶과 소설이 겹쳐지는 것”이라 말한다.
쓰고 싶은 것이 생겨 써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삶.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삶이다. 한때는 새로운 것을 써야만 한다는 부담감에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나 수많은 단편을 썼던 이청준 같은 대가를 보면 늘 같은 주제를 변주했지만 사람들은 그들에게 열광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전달하는 내용이다.
천 동문은 “사람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기억할 수 있는 한 권의 소설이라도 남긴다면 만족한다”며 겸허한 미소를 짓는다.

 

소설은 똥이다

  “소설은 하나의 똥이에요. 마치 고기와 상추쌈을 먹은 다음에 내 몸에 맞춰 소화를 시키고 그 나머지를 내놓는 것처럼 나라는 사람이 타자나 혹은 세계를 받아들여서 내 놓는 과정 이니까”
똑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사람들의 똥은 다르다. 소화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천 동문은 “소화되지 못해서 나오는 것은 토사물일 뿐이에요”이라고 말한다.

 천 동문에게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음식이 앞에 있을 때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잡는 대신 손이 먼저 간다. 예를 들어 눈앞에 생크림 케이크가 있다면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생크림에 집어넣는다. 입으로 느껴져야 할 달콤함과 부드러움이 손가락으로 느끼는 것.

 천 동문은 가끔 세상에 자신의 몸을 내준다. 세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것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빛을 보고 냄새를 맡는다. 그녀는 소설가나 시인이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마땅히 해야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설을 쓸 때 세상은 온전히 그녀의 몸속에 들어갔다 나온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몸의 언어’라고 말하나보다.

 그녀는 소설 속의 인물을 표현하는데도 이 ‘몸의 언어’를 사용한다. 인간의 육체는 하나의 세계다. 때로는 육체의 한 부분을 얘기함으로써 그 세계를 얘기할 수도 있다.
“연애를 예로 들어보죠.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내가 자꾸 그 사람을 자꾸 쳐다보기 때문에 알 수 있죠” 어떤 사람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한숨을 쉴 때 그 사람의 심정이 드러난다. 육체의 어떤 표현으로 그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는 일이 그녀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손으로 생크림 케이크를 먹는 것처럼.

 

모르면 쓸 수 없잖아

 천 동문의 소설 인물들은 생생하다. 이 생생한 장면 하나하나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누구의 말마따나 ‘온 몸의 언어’다.
“모르면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으니까 찾아보기도 하고 취재도 해요 그건 소설가로서의 기본자세가 아닐까요.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건 웃기잖아. 그건 나중에 들통 나기 마련이에요”
신랄한 말투의 할머니와 혼혈 소녀가 흔하진 않지만 아예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족 여인과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밀수무역자의 얘기는 어떻게 쓸 수 있었을까. 

 모르면 쓸 수 없는 그녀는 6개월 간 중국을 떠돌며 그 것들을 배웠다. 조선족인 해화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조선족의 언어, 그들의 고향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윤호라는 인물을 쓰기 위해서 밀수 무역자들 사이에 끼어 짐을 날랐다.
“내가 늘 쓰던 말이 아니잖아요. 그저 흉내 내는 것 뿐이니까 힘들었어요”

 사전을 일일이 찾아가며 의미를 확인하고 연변 친구들에게 감수를 받고. 그 모든 과정에서 그녀의 몸은 혹사당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노력 덕분에 소설 속의 언어가 풍부해질 뿐만 아니라 현장감이 충만해졌다.
“어떤 의미에서는 연변말이나 북한말도 조선말의 하나일 텐데 이 말들을 소설로 옮겨온데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건 자화자찬이지만(웃음)”

 

소설, 네가 있어 정말 다행이야

 등단하기 전 천 동문은 밤마다 아버지 앞으로 불려갔다. 약주를 한 잔 하신 아버지의 말씀은 늘 같았다. “너 세상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거냐. 시집은 안갈거냐. 이러지 마라. 내가 너 때문에 못살겠다”
그런 아버지께 죄스럽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갈수록 심해져 ‘소설쓰기를 그만 두고 시집이라도 가 버릴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200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발표가 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천 동문의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떡을 돌리며 눈물을 쏟으셨다고.
“소설가라는 직업이 면죄부죠. 여행을 가면 예전에는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니냐고 하셨는데 지금은 취재 갔다 왔냐고 하시고, 늦게 일어나도 소설 쓰느라고 그랬구나 하시고”

 그녀의 수입은 소설가 중에서 상위 10%다. 하지만 그 금액은 중소기업의 일반 사원의 연봉보다 적다. 소설로 많은 돈을 버는 작가도 있지만 그 수는 드물다. 그래도 천 동문은 “소설가는 다른 어떤 것보다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며 소설가를 꿈꾸는 후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다.

 “무용도 음악도 타고난 재능이 약간은 필요하죠. 하지만 소설은 어떤 사고의 전환과 노력으로 충분히 쓸 수 있어요. 나도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평소에도 “소설이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말한다.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할 때 마다 느껴지는 안도감 때문이다.

 소설이 진정 자신이 원하던 것이었기 때문에 등단한 지 1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정말 소설이 쓰고 싶다면 해봐요. 나중에 내가 욕망했던 것은 이것이었고 삶의 전체가 됐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올 거에요”

사진 박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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