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에서 얻은 모든 것, 후배들에게 바치겠습니다"
"한양대에서 얻은 모든 것, 후배들에게 바치겠습니다"
  • 최서현 기자
  • 승인 2009.02.28
  • 호수 12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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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대 총동문회장 송재성<토목과 50> 동문을 만나다

"한양대에 왜 기부를 하냐고? 그야 내가 나온 학교이기 때문이지"
아무리 대기업의 동문이라도 100억에 가까운 돈을 기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도 흔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송 동문은 돈을 벌었다면 당연히 기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강하게 말한다. 기업 철학은 ‘흑자를 내는 것’, 동문회장으로서 목표는 ‘훌륭한 후배양성’이라며 자신있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양인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1950년, 우리학교에 입학한 그날부터 ‘한양인’의 삶을 살아온 송재성<토목과 50> 동문을 만나봤다.

사진 이유나 기자

50년 전 한양대 생각하며 ‘재성토목관’ 건립
우리학교에 대한 그의 애교심은 실로 넓고도 깊다. 단지 학교에 뜻 깊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80억을 기부해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재성토목관’이 건립됐다. 지하 2층, 지상 7층, 2천 200평 규모의 현대식 규모인 재성토목관은 내부 역시 멀티미디어실, 사이버강의실 과 각종 실험실, 교수 연구실 등 부족하지 않은 시설을 자랑한다. 당시 우리학교 관계자는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가 중요한 시기에 선뜻 기금을 내놓아 한양인의 소중한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송 동문이 우리학교를 다니던 50년대는 어땠을까. 그의 말에 의하면 당시 학교는 피란지였던 부산 송도 산자락에 있는 ‘천막교사’뿐이었다고. 이런 환경에서도 그는 석사학위까지 따는 학구열을 보였다. 그는 언제든 힘들 때면 천막교사에서 공부했던 그 날을 떠올린단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까. 후배 양성을 위해 ‘최첨단 시설’을 제공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송 동문은 2006년 ‘자랑스러운 한양인’ 상을 받으며 “앞으로도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동상 건립 운동을 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는 게 나의 각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업인으로서 그는 사회의 고마움을 알고 이를 사회에 환원해야한다는 경영 철학을 갖고 있다. 이런 송 동문의 소신이 지금 그의 애교심에 힘을 실었다. 송 동문의 애교심은 자랑스러운 한양인??상과 함께 2009년도, 제 16대 총동문회장 취임으로 증명됐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한양대, 이제는 총동문회장으로
“내 인생을 함께 해왔으며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우리학교에 애교심을 갖는 건 당연하지 않겠어” 송 동문의 성장 동력이었던 우리학교에 그는 이제 ‘총동문회장’이라는 이름으로 서게 됐다.
송 동문은 지난 20일 동문회장 취임식에서 ‘임기 중 4대 과제’를 발표했다. 이제까지 쌓아온 자신의 명예와 능력을 학교에 바치겠다는 것, 후배 양성을 위해 동문회의 역량을 증대시키겠다는 것, 임기 중 한양 발전 기금으로 100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것. 마지막으로 우리학교를 세계 100대 대학으로 진입시키기 위해 동문회 조직 개편과 후배 양성에 힘쓰겠다는 것. 그의 4대 과제 중 후배를 위하지 않은 항목은 없다. 그와 같은 ‘한양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미국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우리나라가 먹고 살 걱정도 잊으며 경제성장을 이룬 것도 모두 ‘뜨거운 교육열’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요즈음 우리나라 학교와 학생들은  경제적 지원 부족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잖아. 연구와 공부에 열중해야 하는데도 말이지”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인재 양성이 필수적이다. 때문에 학교에 지원을 하는 건 기업인으로서도, 한양대의 동문으로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송 동문은 말한다. 또 23만 동문들은 후배를 위해, 후배들은 동문의 뜻을 잇기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사진 이유나 기자
성공을 위한 마음가짐, “도전하라”
그가 늘 후배들에게 말하는 성공을 위한 마음가짐은 강인한 의지, 상상력, 열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고 말하는 그의 삶은 그야말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공무원 20년, 사업 30년 정말 열심히 일했어. 이사관 승진을 코앞에 두고 퇴직해 순전히 자수성가로 지금의 성호그룹을 일궈나갔지"
송 동문은 나이 쉰이 돼서야 사업에 뛰어들었다. 남들은 이미 자신의 직장에서 안정을 얻을 나이. 쉰 살의 그는 ‘성공한 경영인’이 되기 위해 ‘잘 나가던’ 공무원직을 과감히 버렸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쉰도 그에게는 ‘젊음’이었다.
이제는 성호철관, 성호케미칼 등 9개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인. 나름대로 돈도 벌만큼 벌었지만 그의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다. 고희를 훌쩍 넘긴 지금도 그 동안 해왔던 건설사, 제조업체, 부동산 투자회사를 거쳐 최첨단 IT 회사 경영에까지 꿈을 넓히고 있다. 또 그는 사회환원을 위해 계속 노력함은 물론이고 아직 건강하기에 계속 도전해 나갈 것이라고.

공무원에서 기업인으로, 그리고 이제까지 살면서 ‘한양’이라는 이름을 잊지 않았던 그는 의지 하나로 지금 위치에 설 수 있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송 동문은 “가장 맑은 정신으로 ‘할 수 있다, 하겠다’라고 끊임없이 되뇌다보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다”고 말한다. 또 자신을 이 자리에 있게 한 모든 것에 감사하고 환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라고.
“돈이 없는 것, 나이가 많은 것. 어떤 것도 도전을 주저할 이유가 될 수 없어. 나이보다 중요한 건 생각,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인걸”

사진 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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