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더미 속에 피어난 한 떨기 희망
쓰레기더미 속에 피어난 한 떨기 희망
  • 이다영 기자
  • 승인 2009.01.04
  • 호수 128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은 천사들이 만드는 천상의 하모니 ‘지라니 어린이합창단’을 만나다


“노래 부르러 왔는데 한쿡 짱짱 추워요”

 검은 소년의 해맑은 목소리가 백남에 울렸다. 함박눈이 내리던 지난달 22일 지라니 어린이합창단이 우리학교에서 공연을 가졌다. 합창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으며 단원들은 각각 귀여운 정장과 전통의상으로 매력을 뽐냈다. 하나같이 앳된 어린이들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도라지타령과 아리랑을 부를 땐 정확한 발음과 익살스런 표정으로 관객을 즐겁게 했다. 곡 하나하나에 묻어나는 천진한 표정에선 더 이상 쓰레기더미를 뒤졌던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합창단의 노래는 신나게 또 애절하게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나에게 삶의 희망을 주셔서 감사하며 당신을 축복한다”는 마지막곡에 눈시울을 붉힌 관중은 일어나 답가를 불렀다.

지라니 어린이합창단은 세계 3대 빈민촌으로 꼽히는 케냐 고로고초(스와힐리어로 쓰레기라는 뜻)에서 출발했다.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던 아이들에게 음악은 상관없는 단어였다. 지난 2005년 임태종<지라니문화사업단ㆍ단장> 목사가 고로고초의 쓰레기 집하소를 지나다 만난 아이가 발단이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풀려 있고 의욕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쓰레기장 한 가운데서 돼지들과 함께 쓰레기를 주워 먹었다. 임 목사는 “숨이 멎는듯한 충격과 함께 가슴이 심하게 아팠다”며 “눈만 감으면 아이가 떠오르고, 그 애를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라는 압박이 나를 짓눌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임 목사는 “그 아이가 희망을 찾아 당당히 일어서게 해주고 싶었다”며 “만국을 통틀어 노래는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들의 삶에 활력을 준다는 사실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출범한 지라니문화사업단은 오디션을 열었고, 슬럼가 아이들은 희망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겁먹은 눈빛이었다. 도레미도 모르고 줄을 서는 법부터 배웠다. 발성과 음계를 익히는 것만으로 몸살이 났다. 그러나 오합지졸의 아이들은 어김없이 연습실로 달려왔다.

그 결과 지라니어린이합창단은 모인 지 2달 만에 창단식을 가졌다.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초청공연을 했고 케냐 대통령궁에서 실력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미국 순회공연을 거쳐 한국에서도 2회째 순회공연을 가졌다. 김재창<지라니문화사업단ㆍ예술감독> 지휘자는 “가난하다고 희망도 가난할 수는 없다”면서 “음악을 통해 희망과 감사를 회복한 아이들은 꿈을 꾸며 비로소 아이다워졌고, 우리는 더 큰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노래를 통해 자존감을 가졌으며 관객 앞에 섰다. 타인에게 감동을 줌으로써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무표정의 얼굴에는 웃음이 돌아왔고 고와진 목소리만큼 꿈은 한층 자랐다.

지라니 합창단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 정상의 어린이 합창단이다. 또 어린이 단원 하나하나가 정직하고 실력 있는 지도자가 돼 어려운 이들을 돕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임 목사는 “이번 지라니 내한공연은 대학생들에게 어떤 역경이 있어도 올바른 희망을 세우고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이겨 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합창단 아이들을 보면서 잃어버린 어릴 적 희망을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라니 합창단은 지속적인 공연을 통해 세계 각지에 희망을 전할 예정이다. 합창단 창단 이야기를 영화와 뮤지컬로 만들며 지라니 음악학교를 세우는 일 또한 계획 중이다. 송준우<인문대ㆍ독어독문학과 08> 군은 “피부는 검지만 누구보다 맑은 아이들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을 봤다”며 “함박눈과 함께 가슴 한 켠이 따스해졌다”고 말했다. 이 날 김종량 총장은 지라니 어린이합창단원이 우리학교에 입학할 시 전액 장학금과 함께 기숙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진 이다영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