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분신,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또 하나의 분신,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서보영 기자
  • 승인 2008.11.23
  • 호수 12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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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주는 특별하고 소중한 의미

시인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름을 부름으로써 의미 있는 존재가 됐다는 뜻이다. 에스키모 인들은 몸과 영혼 외에도 이름이 있어야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만큼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연인은 떠나갔어도 그 이름은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고 첫사랑의 이름은 애틋한 기억을 불러온다.

나를 비추는 거울, 이름

사람은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선택적 인지가 가능하다. 아무리 시끄러운 장소에 있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는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이승희<사범대ㆍ교육학과> 교수는 “이름은 평생 불리는 만큼 대표성을 띄고 있다”며 “이름을 드러낸다는 것은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름을 먼저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로 아직 대화도 나눠보지 못한 상대를 판단 해버리기도 한다. ‘인지적 구두쇠’라는 이론이 있다. 정보를 선택적으로 조합해 단정시켜버리려는 심리를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인지적 구두쇠’ 심리는 이름이라는 작은 정보만으로도 상대방의 성격 또는 생김새까지 추측하게 한다. 많은 연예인의 경우 예명으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든다.

이 교수는 “이름이 실제 인격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사람은 타인이 하는 반응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타인이 믿는 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중성적인 이름을 가진 사람은 ‘너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였구나’ 혹은 그 반대의 반응을 경험하곤 한다. 이 경우 타인의 심리적 기대에 맞게 행동하고자 중성적인 성격을 갖게 될 수 있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이미지”

김선미<공대ㆍ분자시스템공학과 07> 양은 “싸이월드로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아본 적이 있다”며 “이름이 같다면 왠지 나와 성격도 비슷할 것 같다”고 말했다. 비단 김 양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유유상종의 습성을 지니고 있다. 이름이 비슷하거나 같다면 상대방과의 유사성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경우에 비해 쉽게 호감을 갖게 된다. 더 나아가 이름이 비슷하면 가치관이나 태도도 자신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해 안정감을 찾게 된다.

책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을 쓴 누다심<심리학칼럼니스트> 씨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상대방의 특성과 그 이름을 연합하려고 한다”며 “동명이인을 만났을 때 먼저 알고 있던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 그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박명수라고 소개했을 때를 떠올려보라”며 “같은 이름의 개그맨 박명수를 생각하고 웃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쿠미코(이케와키 치즈루 분)는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에서 따온 ‘조제’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 주인공의 이름을 덧씌움으로써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것이다.

반면 사람은 자신의 독립성과 개성을 유지하려는 심리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과 같은 이름이 많은 것을 싫어하기도 한다.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이로 인해 자신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름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해지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 경우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갖기 위해 개명신청을 한다. 최근에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더 우선시해 큰 결격사유가 없는 한 허가를 해주는 추세다. 개명 허가율이 10%에 불과했던 30년 전에 비해 요즘은 90% 이상으로 늘었다.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는 경우부터 시작해서 발음이 불편한 경우,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까지 사례는 각양각색이다. 김경욱<사범대ㆍ교육학과> 교수는 “이름이 불릴 때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다면 자존감이 위축될 수 있다”며 “이럴 경우 개명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몇 년 전  개명을 한 서세화<인문대ㆍ국어국문학과 07> 양은 “바꾸기 전 이름을 생각하면 턱을 괴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며 “새로운 사람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또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이름이 가장 좋은 이름인 것 같다”며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쉽게 바꿀 수 있어야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무 때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름을 바꿀 수 있다면 사회의 법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현재 개명을 하기 위해서는 이유서ㆍ가족관계 등록부ㆍ주민등록등본과 경우에 따라서는 개명 이유를 뒷받침할 수 있는 소명 자료까지 갖춰야 한다.

배우리<이름사랑> 대표는 “이름은 타인에게 더 많이 불리는 만큼 당사자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개명절차가 좀 더 간소화돼야 한다”며 “성인이 된 후에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바꿀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차선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서보영 기자 raeng@hanyang.ac.kr
일러스트 장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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