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러스요? 우리에겐 시트콤 같죠”
“베토벤 바이러스요? 우리에겐 시트콤 같죠”
  • 서보영 기자
  • 승인 2008.11.09
  • 호수 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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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생이 말하는 「베토벤 바이러스」

 
 글을 시작하기 전에 고백을 하나 하자면 기자는 음대생이다. 어느 날 같은 교양수업을 듣는 학생에게 전공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오보에를 전공한다고 대답하기가 무섭게 “아! 이순재가 하는 악기요?”란다.「베토벤 바이러스(이하 베바)」덕분이다. 미디어의 힘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지난달 발매된 베바 공식 클래식 컴필레이션 앨범은 발매 열흘 만에 1만장을 돌파했다. 또 지휘자 강마에(김명민 분)가 입고 나온 옷은 ‘강마에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클래식이 친구 됐어요”
음악을 한다고 하면 흔히들 손에 물도 묻히지 않고 곱게 자랐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베바 속 주인공들은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기도 한다. 김슬기<음대ㆍ피아노과 07> 양은 “일반인들이 베바를 보고 쉽게 클래식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며 “베바를 통해 음악인들만의 세계가 신선하게 비춰졌고 일반인들이 음악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클래식은 광고나 영화 등 대중적인 곳에도 쓰인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클래식을 특정한 계층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도희<음대ㆍ관현악과 08> 군은 “베바에는 일반인에게도 익숙할만한 클래식 곡들이 등장 한다”며 “일반인들이 더 이상 클래식을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5화를 보면 결혼 후 악기에서 손을 놓아야 했던 아줌마 정희연(송옥숙 분)이 리베르 탱고의 솔로 연주를 멋지게 해낸다. 이처럼 대부분의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곡이 극 중 상황과 어우러져 새로운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사랑하는 마음만으론 불가능”
베바 속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나름의 사연을 갖고 있다. 배용기(박철민 분)는 카바레에서 색소폰을 불던 사람이고, 트럼펫 연주자인 강건우(장근석 분)는 전직 경찰관이다. 그런 그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오케스트라에 들어온다. 실력이 ‘형편없는’ 그들의 연주가 강마에(김명민 분)의 지휘로 인해 순식간에 발전한다.

3화에서는 지휘자 강마에가 연주자들을 향해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고 풀잎향기도 난다’고 얘기하자 연습실이 들판으로 바뀌면서 연주자들은 전에 없던 연주 솜씨를 발휘한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지휘자라도 세밀한 연습이 되지 않은 오케스트라를 상대로 이런 일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한양대 대학원 송호찬<음악학과 석사과정 2기> 씨는 “화려해 보이는 오케스트라도 사실은 연습이 우선”이라며 “드라마에서처럼 실력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손쉽게 발전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 또 “연습으로 다져진 실력이 뒷받침돼야 자신이 원하는 음악도 표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바 속 트럼펫 연주자 강건우는 악보도 볼 줄 모른다. 그런 그가 오케스트라 지휘까지 하게 된다. 한 번 듣는 것만으로 음악전체를 외울 수 있는 천재이기 때문에 악보를 볼 줄 몰라도 연주와 지휘가 가능 하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지휘자는 스코어에 적혀있는 마디 수를 보고 연주자들에게 어느 부분부터 다시 해보자는 요구를 해야 한다. 악보를 보지 못하는 지휘자는 그야말로 드라마 속 허구일 뿐이다.

13화에서 강건우는 이제부터 자기 방식대로 지휘를 하겠다며 피아노 협연 곡을 그 자리에서 바꾼다. 피아노 연주자는 바뀐 새 곡을 무리 없이 외워서 연주한다. 오케스트라도 악보를 받자마자 지금 당장 무대에 서도 될 만큼의 기량을 발휘한다.

이에 대해 오주희<음대ㆍ피아노과> 교수는 “피아노 연주자가 모든 곡을 외우고 있는 천재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대부분의 연주자는 특별히 연습을 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와 솔로악기의 협연 시 협연자는 자신이 정한 곡을 미리 오케스트라에 알려 파트악보 준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지휘자가 협연자의 곡을 간섭하는 일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8화를 보면 치매에 걸린 오보에 연주자 김갑용(이순재 분)이 무대연주 도중 실수를 한다. 치매 걸린 연주자를 쓸 수 없다는 지휘자 강마에에게 김갑용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연주를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 속 프로 오케스트라의 세계는 철저하다. 연주 실수 한 번으로 자리를 내놔야 할 정도다.

현실반영과 드라마 사이
음대생들은 베바가 뜬 이후로 음악을 하지 않는 주변인들에게 음악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음악을 전공하는 입장에서의 베바는 사실상 과장된 부분들이 있어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게 한다.
지휘를 전공하는 한양대 대학원 한상우<음악학과 석사과정 2기> 씨는 “지휘자가 정말 드라마에서처럼 권위적이고 막말을 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며 “그건 드라마의 흥미를 위해 과장된 부분이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1화를 보면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 연주자를 섭외하는 장면이 나온다. 연주자는 프로라는 이유로 거들먹거리며 3번 연주에 150만원이라는 큰돈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권송택<음대ㆍ작곡과> 교수는 “정말 그 정도 돈을 받을 연주자라면 드라마와 같은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식 연주자도 그 돈의 반 보다 적게 받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털어놨다.

지휘자 강마에는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도중에 연주를 멈추기도 하고 당일 날 연주를 취소하기도 한다. 심은영<음대ㆍ작곡과> 교수는 “연주를 지휘자 마음대로 취소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부분의 연주자는 몸이 아파도 약속한 연주를 한다”고 말했다. 또 “흥미를 위해서라지만 왜곡된 음악인에 대한 정보는 문제가 있다”며 “현실적인 음악인들의 고충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보영 기자 raeng@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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