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언론이 죽였다
그녀는 언론이 죽였다
  • 장형수 기자
  • 승인 2008.10.05
  • 호수 12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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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다. 눈으로 직접 뉴스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고 안타까웠다. 심지어 평소엔 잘 사용하지도 않는 핸드폰 무선 인터넷으로 뉴스 검색까지 했다.

지난 2일부터 그녀의 자살소식이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하면서 각종 언론들은 앞 다퉈 관련 기사들을 토해내고 있다. 별도로 여러 면을 할애해 그녀의 죽음을 조명했고 각종 포털 사이트는 그녀로 도배됐다.
역시나 특종 터뜨리기에만 열중하고 있는 ‘변함없는’ 모습이다.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찾아보기 힘들고, 일반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 따위는 전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인 「중앙일보」는 당일 인터넷 홈페이지 기사에 구체적인 자살 방법까지 묘사했다. 뿐만 아니라 “압박 붕대는 일반 시중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며 ‘자살도구’의 구입 방법까지 친절하게 안내했다. 아주 가관이다. 실로 ‘미친’ 언론이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수많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잇따라 자살을 선택한 것도 소설이라는 미디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금 ‘베르테르 효과’라고 하는 자살의 전염을 일으키는 중요한 매개 고리를 간과하고 있다.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던 것이 언론 미디어의 보도를 통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언론이 현실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자,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과연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 악성 댓글일까.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사건이나 현상을 접할 수밖에 없는 간접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악성 댓글을 만들어내는 것도 결국 인터넷 혹은 포털이라고 하는 미디어 매개체를 통해서다. 흔히 자살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 우울증의 근원도 직접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매개체를 통해 이뤄지는 간접적인 의사소통에 있다.

물론 악성 댓글을 달고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언론들은 마치 그들만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인 것 마냥 몰아세우고 있다. 정작 악성 댓글의 원천을 스스로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망각한 체 말이다.

이런 식의 해석은 한 인간의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으로나, 그 죽음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조명하는 방식으로나 상당히 자극적이고 거칠어 보인다. 죽음의 원인을 명백하게 규명하겠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모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복잡한 것이 인간의 삶이고, 죽음 역시 그렇다.

자살 만큼 주변 사람들을 허망하게 하는 일도 없다. 예전엔 자살이라고 하면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곤 했지만, 요즘엔 ‘인간적인 마지막 신음’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그녀는 지금의 대학생들과는 시대적인 거리감이 있다. 그녀가 청춘스타였을 때의 모습을 잘 모르고, 만인의 연인이었을 때의 모습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8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명실상부의 국민배우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악성 댓글은 계속되고 각종 루머들을 삽시간에 퍼지고 있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얼마나 잃어야 하고, 얼마나 슬퍼해야 할까. 그녀의 수많은 팬들은 오늘도 그녀를 추억하며 가슴으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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