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해도 안 되는 것
억지로 해도 안 되는 것
  • 장형수 기자
  • 승인 2008.08.24
  • 호수 12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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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그랬다. 내분이 있을 때는 외부에 적을 만들어 내부의 단결을 유도했고, ‘높으신 분’들은 교묘하게 그 틈을 타 서둘러 일을 진행시키곤 했다. 월드컵이 그렇게 이용당했고, 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의 매체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너도 나도 올림픽에 열광하고 조중동 트리오는 사이좋게 올림픽 기사로 도배질을 하고 있다. 물론 몇 번을 다시 봐도 감동적인 명장면들이 지만 문득, 이런 열광적인 분위기를 매체들이 조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5판 연속 한판승이라는 화끈함과는 어울리지 않게 해맑은 미소를 갖고 있던 최민호, 그가 하염없이 흘리던 눈물은 누가 봐도 가슴 뭉클했다. 동양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아시아 선수로서는 72년 만에 자유형의 금빛 물살을 갈랐던 박태환, 그의 당당함 역시 누가 봐도 대견스러웠다. 국민들에게 기쁨을 안겨준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 딸들이 어디 이들뿐만 이겠는가.

 하지만 이런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KBS 정연주 사장을 지난 11일 해임했다. 그러자 현 정부가 막가파식으로 공영방송의 수장을 몰아냈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더욱이 ‘대통령이 KBS 사장을 해임할 수 있는 것인가’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연주 사장의 객관적인 평가는 뒤로 한 채, 그저 올림픽 특수라는 틈을 이용해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한다는 데 있다. ‘왜’라는 정당한 이유조차 없는 강압적인 현 정부의 모습에서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커먼 속내가 뻔히 들여다보인다. 더군다나 그가 시민사회의 ‘공모 추천’을 거쳐 임명된 최초의 KBS 사장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기득권 세력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공ㆍ사 조직을 막론하고 조직의 수장에 대해서는 대부분 임기제가 적용된다. 임기제는 말 그대로 해당 직위가 끝나는 시기를 미리 규범적으로 정해놓은 것을 일컫는다. 임기제의 의미는 조직의 수장에게 일정한 기간 동안 책임 있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수장의 잦은 교체 또는 예측가능성 없는 교체로 인해 조직의 안정성이 동요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임명권자가 해임 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의 해임 권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행 방송법을 살펴보면, KBS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의 임명을 받는 순간 직무상 이사회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한다. 그것은 KBS 사장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방송매체로서의 KBS가 행사하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것이고, 민주주의 실현과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이다.

 대통령의 개입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침해를 의미한다. 방송이 비록 국가권력은 아니지만 대통령ㆍ국회ㆍ법원ㆍ헌법재판소에 의한 공권력 행사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사회적 권력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국민의 눈과 귀가 베이징으로 향한 사이, 또다시 정부가 교묘하게 그 틈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정연주 사장은 ‘눈먼 권력’이 일시적으로 KBS를 장악할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또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작년 여름 연세춘추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학생기자들이 옹립한 편집국장이 아니라 학교 측의 입맛에 맞는 편집국장을 세워 큰 마찰을 빚은 것이다. 결국 주간교수가 강행한 편집국장은 얼마 못가 사퇴했고, 그 자리는 학생기자들이 옹립한 편집국장이 메웠다.
 결국 그렇게 될 것은 그렇게 되고야 만다. 이 세상에는 억지로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게 아무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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