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가치구속
돈의 가치구속
  • 김민수 기자
  • 승인 2008.02.19
  • 호수 12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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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체제선 당연한 귀결…자본주의 사라지지 않아

“저기, 왜 공부해야 하냐구요” 몇 년 전 했던 한 공익광고의 문구다. 한 아이가 부모에게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묻고 ‘출세하기 위해’, ‘많은 수입을 얻기 위해’, ‘다 널 위해서’ 라는 답변을 받은 뒤 다시 던진 한 마디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갖고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추구하는 삶의 목표는 모두 돈에 수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불과 두세대라는 짧은 시간을 거쳐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뤘다. 1950년대 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를 연례행사처럼 맞아들였으나 지금은 굶어죽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가난과 함께 사라졌어야 할 ‘먹고살기 힘들다’, ‘못 살겠다’ 하는 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삼시 새끼 해결할 수 있고 외식이나 여행도 다닐만한 형편임에도 그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를 정정훈 <수유 + 공간너머>연구위원은 과도한 교육비 때문으로 봤다. 그는 “가정경제가 휘청일 정도의 교육비는 현세대의 경쟁구조가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준다”며 “이런 치열한 구조가 만들어지는 원인은 삶의 가치가 돈에 국한돼 있기 때문”이라 말했다. 교육비가 이렇게 높은 이유는 삶의 가치가 수많은 가치 중의 하나일 뿐인 돈에 경도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정 위원은 ‘대중이 하나의 방식으로만 살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서동진 <연세대 · 사회학>강사는 우리 삶의 가치가 돈에 경도된 것이 아니라 다른 가치들이 돈에 구속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IMF를 거치면서 민주주의와 같은 이념에 대한 담론은 급격히 경제에 대한 담론으로 선회했다. 이 경제담론이 주체의 담론을 포괄하기 시작해 바람직한 경제인상을 바람직한 삶과 결부지어 삶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일을 하는 행위는 자신을 실현하는 것이고, 부자가 됐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을 잘 가꿨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한 카드회사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문구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일에 재능과 창의를 다하면 행복을 얻을 것이고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다.

직장생활은 연명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 아닌 인생을 즐기는 행위다. 그리고 직장에서의 생활도 개인의 능력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연봉제나 팀제 같은 제도를 만들어 직장은 능력에 맞게 돈을 벌 수 있으므로 개인의 행복해지려는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장이 된다. 이정도의 환경이 일터에 조성됐는데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전적으로 그 사람의 책임인 것이 된다.

그는 또 돈에 삶의 가치가 구속되는 현상에 반발한 반자본주의의 움직임은 자본에 덧씌워져 자본의 새로운 트렌드가 된다고 주장한다. 돈에서 벗어나 건강을 통해 삶의 행복을 찾자는 운동은 자본주의와 일사분란하게 결합해 ‘웰빙’이라는 새로운 소비문화로 탈바꿈 했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돈에서 벗어난 삶을 살려는 원리를 삼켜버리는 힘이 있으므로 돈과 별개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자본주의가 끝나면 돈에 구애되지 않는 삶의 가치를 정립할 수 있을까. 이 가정에 대한 답은 내릴 수가 없다. 자본주의의가 사라질 것인가라는 물음에 좌파 경제학자인 메그나드 데사이는 저서 「마르크스의 복수」를 통해 자본주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드러난 문제를 극복한 형태로 거듭난다고 답한다. 부의 창조 면에서 자본주의보다 효과적인 생산양식이 나오지 않는 이상 자본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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