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평가는 본인이 하세요”
“성적 평가는 본인이 하세요”
  • 류효정 기자
  • 승인 2007.12.02
  • 호수 126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효정 기자의 같이 걸을까

<들어가며> 시험도 없고 레포트도 없습니다. 그것만 독특한 점이 아닙니다. 강의 첫 시간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한 학기 커리큘럼을 결정합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수업이지만 조금 낯선 느낌도 듭니다. 우리학교에서 2년 째 강사생활을 하고 있는 하승우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진하진 않지만 날카로운 눈썹이 얼굴 중 단연 돋보입니다.

기자가 “좀 특이한 평가방법이에요”라고 묻자 선생님은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사람을 판단할 권한은 없는거죠”라고 답하십니다. 강의를 하다보면 학생 중 선생님의 스타일에 자신을 최적화시키는 학생들을 만납니다. 선생님은 대학이 처음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말합니다. 지금 대학이 자정능력을 상실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만드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도 됩니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과 한 학기를 보냅니다. 하지만 학생 한 명 한 명과 만나는 순간은 바로 답안지를 채점할 때 일뿐입니다. 선생님은 “답안지만을 보고 어떻게 한 사람을 평가내릴 수 있겠어요, 하지만 학생들은 누군가에게 일방적 기준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예전 다른 학교 강의를 했을 때 학생들의 성적을 모두 A+을 줬습니다. 물론 그곳에서 계속 강의하진 못하게 됐지만 열 명 남짓한 학생들과 동그랗게 앉아 도란도란 생각을 나누다 뒤돌아서 평가를 학생의 우열을 나눠야 하는 일은 고통이었습니다. A와 B가 누구를 위한 것 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학창시절을 들려 달라는 부탁에 “공부를 한 기억이 없네요”라고 말하십니다. 90학번은 대학 선배들 입학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학번입니다. 전교조 1세대라 불리며 고등학교 시절부터 민주화와 직선제를 위한 투쟁을 몸소 익힌 학번이라 그렇습니다. 공부를 한 기억은 나지 않아도 F학점을 받으면 술을 공짜로 주던 대학사회가 기억납니다. 12시를 넘으면 술을 팔 수 없었기 때문에 아주머니는 커튼을 치며 알아서 먹고 정리하고 가라는 말만 남긴 채 가게를 비우시면 설거지도 하고 술도 먹고 이렇게 함께 살아갔습니다.

점점 짧아져 이젠 사라질 듯 보이는 가을이 걱정되는 만큼 학생들이 살아갈 세상도 걱정입니다. 불쌍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역할은 불쌍한 세대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십니다. 다음세대의 행복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은 오만입니다. 다만 남겨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을 고민하는 20대는 치열한 주변 환경 속에서 불안함을 느낄 것입니다. 선생님이 해주고 싶은 일은 그 20대에게 “자네는 틀리지 않았네, 바르게 살고 있네”라고 복돋아 주는 것입니다.

20대는 민감한 나이입니다. 그렇기에 사회와 시대의 영향에 흔들립니다. 힘을 실어 주고 싶습니다. 수업을 하는 이유, 세상을 고민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