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토피아와 디지털토피아
에코토피아와 디지털토피아
  • 한양대학보
  • 승인 2007.08.26
  • 호수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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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을 향한 에코토피아와 디지털토피아의 동상이몽이 한창이다.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이 두 몽상은 중대한 차이를 가진다.

디지털토피아와 에코토피아는 세계 인식 자체가 다르다. 디지털적인 인식이란 세계를 불연속적이고 불확정적인 방식을 통해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은 존재 혹은 존재자 자체를 0과 1로 조각낸 다음 그것을 무한수열적인 조합을 통해 새로운 어떤 것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적인 인식하에서는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까지 생산해 냄으로써 잉여적인 양태를 보인다.

이 잉여성이 세계를 점점 더 불연속적이고 불확정적인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디지털적인 인식에 비해 에코적인 인식은 세계를 연속적이고 확정적인 방식을 통해 드러낸다. 에코적인 인식하에서 세계는 디지털에서처럼 갑자기 켜지거나(0) 꺼지는(1) 일이 없으며, 갑자기 검정색(0)에서 흰색(1)으로 변하는 일도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잉여적인 양태라는 것이 드러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에코적인 인식은 아날로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토피아와 에코토피아는 존재에 대한 해석 자체가 다르다.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디지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being digital’이라고 할 때 그 being은 기존의 어떤 실체로부터 존재성을 부여받은 그 being은 아니다. 이때의 being은 색깔도 없고 크기도 없고 무게도 없는 단지 광속으로만 흐를 수 있는 bit라는 기반 위에서 성립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존재론을 이야기할 때 종종 말해지는 ‘無名天地之始’의 無와는 다른 것이다. 無의 없음은 ‘있음을 전제로 한 없음’이다. 이에 비해 ‘being digital’의 없음은 ‘없음을 전제로 한 없음(nothing)’이다.

디지털과 에코적인 것은 반드시 상생해야만 한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의 양식 자체가 무서운 속도로 디지털화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디지털 혁명이 에코적인 존재기반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컴퓨터의 디지털기능이 제공하는 가상공간의 세계 속으로 끊임없이 미끄러져 내리다가도 생명의 氣로 충만한 현실로 돌아와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여기에서 행해지고 있는 디지털토피아와 에코토피아의 동상이몽은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디지털토피아가 유토피아라는 발상은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존재 혹은 존재자의 토대가 되는 에코적인 존재성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며, 에코토피아가 곧 유토피아라는 발상은 지금 여기에서 모든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 될 정도로 지배적인 힘의 실체로 부상하고 있는 디지털문명 자체를 외면한 채 지나치게 당위적이고 이상적인 측면만을 내세울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또한 위험하다.

가장 바람직한 유토피아 상은 디지털토피아와 에코토피아 사이의 적절한 긴장과 이완을 통해 성립되는 것이다. 이 둘 사이의 융화의 묘가 21세기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선택하라 에코냐, 디지털이냐 아니면 에코 · 디지털이냐.

이재복<국문대·국문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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