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대학 동경하는 풍조는 왜 만들어졌나
유명 대학 동경하는 풍조는 왜 만들어졌나
  • 김민수 기자
  • 승인 2007.08.26
  • 호수 1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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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에 국내 개봉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보는 내내 아찔한 영화다. 전학 첫날 선생님을 사칭한 것을 시작으로 비행기 조종사에 이르는 주인공의 가짜인생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본 후에 관객들은 실존인물을 알고 싶다며 영화 속 인물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신정아씨 학력위조사건이 터지기 불과 4년 전 일이다.

신정아씨 학위조작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출신 대학만 보고 사람을 평가해왔던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명 대학 출신으로 포장만 하면 만사형통인 우리 사회의 모순을 십분 활용했다. 그래서 그럴듯한 거짓학력으로 10년에 걸쳐 호사를 누렸다. 그 오랜 시간동안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유명 대학 간판에 맹목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유명 대학=출세의 지름길
일선 학원에서는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한 유명 대학 제2캠퍼스 학생 김씨는 “본 캠의 차별대우가 불만”이라며 “나 스스로도 본 캠에 들어가면 우월감을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 이씨도 “명문대에 들어가야 성공할 기회도 있는 것”이라며 “명문대생과 비명문대생을 달리 보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김광석<중앙학원ㆍ입학상담주임> 역시 “명문대의 간판은 무시할 수 없다”고 한 뒤 “같은 실력이면 명문대생을 좋게 보기 마련”이라 말했다.

유명 대학을 지나치게 선호하는 원인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류 사회로의 등용문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온라인 취업 전문업체 ‘잡코리아’의 지난해 11월 직장인과 대학생 1천2백38명을 대상으로 한 ‘성공하기 위한 요건’을 묻는 설문조사에 ‘학벌’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1위를 차지한 일이 있다.

한편 ‘조선일보’가 9개 그룹 주력 계열사의 작년 대졸신입사원의 인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서울 연세 고려대 출신이 전체(3천9백88명)의 4분의 일(1천38명)을 점하고 있다. 또 ‘한국개발연구원’이 21일 발표한 연구보고서는 대학 서열에 따라 졸업생의 평균 임금이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1백99개 4년제 대학을 입학성적으로 서열을 메긴 뒤 5개 대학씩 나눠 내려갔더니, 졸업생의 평균 급여가 상위 5개 대학(2백33만 원)과 1백1위 이하 대학(1백45만 원) 간에 약 1백 만원의 차이가 났다. 이처럼 유명 대학을 동경하는 분위기는 졸업 후에 보장되는 사회적 대우 때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관리수급요청에 대박, 졸업생 요직장악으로 세 불리기, 학벌 형성으로 굳히기
그러면 유명 대학 출신의 사회적 대우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이정규<한국교육개발원 ㆍ연구위원> 의 저서 「한국사회의 학력ㆍ학벌주의」에 납득할만한 의견이 있다. 광복 후 관직의 수요에 대한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대 상황이 오늘날 유명 대학 위상의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학력을 기준으로 관직을 등용하다보니 교육기관에서 발행되는 졸업장은 지위획득을 위한 ‘신임장’이 됐다. 이런 학력의 효용성은 일류 대학일수록 높았는데, 당시는 일본 유학파가 득세했다. 군사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가의 적극적인 학력수요정책은 교육기관의 양적팽창을 초래, 고학력ㆍ일류대로의 열망과 선망을 부채질했다. 대졸 이상 학력은 당연한 것이고 유명 대학 출신 여부를 따지는 풍조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한편 이 시기는 오늘날 소위 SKY라 불리는 서울 연세 고려대와 사관학교의 졸업장이 약발이 먹히는 전환점이다. 정치권력의 핵심인 국회의원의 출신 대학을 살펴보면 5대 국회까지는 일본 유학파가 평균 45%로 압도적이었으나 군사정권 이후 비중이 줄었다. 그 빈자리를 대부분 서울대 출신이 계승하고 연세 고려대 사관학교가 나눠먹는 양상을 보인다. 이후 군부세력이 정권에서 물러난 15대 국회 이후 사관학교는 선두 그룹에서 탈락, SKY 출신이 전체 의석의 과반수 이상을 확보하는 양상이다.

정치세력집단을 특정 대학이 독식하는 분위기는 다른 분야에 파급돼 사회 주류 계층을 특정 대학이 독식하게 됐다. 이때가 1970년대로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언론 광범위한 분야에 미리 진출해 있던 특정 대학 출신이 모교 출신을 밀어주는 학벌이 형성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학벌이 좀처럼 깨지지 않아 특정 유명 대학이 사회 주류라는 인식도 굳어지고 출신 학생을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학벌 없는 사회, 꿈인가 현실인가
유명 대학 지상주의,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최우원<부산대ㆍ철학과> 교수는 “과거 고도성장기 국가 발전을 가속화하고자 대학 서열화로 경쟁을 부추긴 면이 있다.”면서 “앞으로 사회가 선진국화되면서 단순히 대학 간판보다는 개인의 실력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교수의 전망처럼 출신 대학이 아닌 능력을 존경하는 사회는 도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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