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 비친 여성-주방에서 밥만 하는 가난한 질투의 화신
광고에 비친 여성-주방에서 밥만 하는 가난한 질투의 화신
  • 김보만 기자, 유광석 기자
  • 승인 2007.05.20
  • 호수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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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잘라봐”라고 말한다. 손에 잡힌 머리카락이 금방이라도 잘려나갈 것 같은 이 장면은 샴푸 <엘라스틴>광고의 한 장면이다. 질투심을 전면에 내세우며 여자는 자신보다 예쁜 사람은 눈꼴셔한다.  

텔레비전 광고를 유심히 보면 그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특성 몇 가지를 알 수 있는데 주로 시기와 질투를 일삼거나 가사 일에 전념하는 모습, 경제력이 없거나 성적매력만을 지닌 존재로 나타난다.

인격보기 - 여자는 질투의 화신?

‘날씬하고 예쁜 여자의 백 속엔 뭐가 들었을까?’<블랙빈 테라피> 이효리의 아찔한 허리를 보여주고 걸어가던 여자는 이효리와 일부러 부딪혀 가방 안에 담긴 음료수를 확인하고야 만다. 이 광고에서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린다.

‘날씬해서 걸릴게 없는 그 앨, 그 앨 마셔버렸다’<L녹차> 카피에 등장하는 ‘그 앨’은 광고에서 동경의 대상이 되는 한 여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질투의 대상인 ‘그 앨’을 마셔버렸다는 멘트가 섬뜩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 앨’을 마신 주인공의 미소는 녹차광고에 어울리게 산뜻하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광고 속 여성들은 대립구조를 많이 띤다. 앞에 얘기한 엘라스틴, 블랙빈 테라피, 엘녹차는 라이벌 관계의 두 여성, 그리고 광고를 보는 여성시청자까지 질투를 하고 시샘을 즐기는 탐욕스런 존재로 끌고간다.

이 외에도 정려원과 윤은혜가 예쁜 옷과 가방을 독점하려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고<엠플닷컴> 여자 후배가 여자 선배를 창문으로 훔쳐보며 “질투가 날 만큼 닮고 싶은 선배가 있습니다”<소나타 envy u> 라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역할보기 - 주부이거나 슈퍼우먼이거나

요즘은 ‘시집살이가 웬말이냐’고 하지만 광고에 나오는 여성들은 아직 시집살이 중이다. 남편이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보며 부인에게 말한다. “엄마오신데, 입맛 까다로운 거 알지?” <샘표 향신간장> 남편의 얘기를 듣자마자 부인은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한다. 부인의 목표는 오로지 시어머니의 입맛 맞추기에 집중된다. 중요한 건 부인과 남편의 대화가 너무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거다. 요리를 하는 내내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주방일은 오로지 부인만의 몫처럼 보인다.

광고 속 결혼한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은 또 있다. 늘 남편과 아이에게 희생하고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으로의 설정이다. 변정민은 집에서 혼자 쿠키를 구우며 남편과 아이를 기다린다.<큐원> 바쁜 아침, 부인은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교를 챙긴다. 자신을 위해 주스 한 컵 마실 시간 없는 여성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늘 남편과 아이가 먼저인 당신, 그런 당신을 델몬트가 응원 합니다’<델몬트> 또는 남편과 아이의 야채 섭취량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희생적인 어머니상을 표현한다.<야쿠르트 하루야채>

이처럼 광고 속 여성은 잠정적으로 전업주부라고 생각하게 하거나 직업이 있는 여성이라도 완벽하게 집안일을 해내는 슈퍼우먼이다. 여성취업자가 전체의 42.1%를 차지하고 해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는 시대, 광고에서 여성, 특히 기혼여성은 부인이나 엄마의 역할로 주로 그려진다.

고정관념보기 - 애교있으면 돈이 없고 예쁘면 머리가 나쁘다?

등장인물들이 노래하는 광고로 유명해진 하이마트 광고는 광고 초창기부터 여자가 남자에게 가전제품을 사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최근나온 <하이마트 에어컨>에서 여자주인공 현영은 “무더위에 지쳤어요”라며 에어컨을 사달라고 남자에게 애교를 부린다. 이윽고 남자가 “에어컨을 사줄까 말까?”라고 말하며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올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두 남자에게 달려있다. 경제권이 남자에게 있다고 설정하는 이 광고에서 여자는 자기가 사고싶은 것을 사지 못하고 남자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하이마트 광고는 시리즈물에서 계속적으로 이런 남성의 경제적 우위를 나타낸다.

광고에서 남성은 경제력만 여성보다 우위에 있는게 아니다. 지적능력도 종종 여성보다 한수 위라고 설정한다. 프랑스에서 음식을 주문하려는 여자, 영상통화전화기를 웨이터 앞에 내밀자 남자친구가 대신 주문을 멋지게 해준다.<show> 정작 프랑스에 가 있는 여자는 불어를 못하는 듯하다. 남자는 면도까지 하며 쉽게 해내는 걸 여자는 하지 못한다.

“광고는 미래의 여성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광고는 현재의 흐름을 반영하기도 하고 흐름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광고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최근 자신의 생활을 즐기고 전문직을 가진 여성을 내세운 광고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 수동적 인물로서의 이미지를 전부 벗어버리지는 못하는 건 지금 우리사회의 모습과 닮아있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양성평등사회로 가기위한 과도기적 상황이 광고에 담겨있는 것이다.

하지만 광고가 미래를 주도해 나갈 수도 있다. 심성욱<언정대·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광고는 미래의 여성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트렌드의 반영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광고가 트렌드를 만들어 나간다”고 말했다. 이는 광고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파고들어 소비를 비롯한 생활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의미한다. 전신영<언정대·신문방송학과 06> 양은 “광고에서의 환상이 현실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이를 닦고 껌을 씹는다는 건 상상하지 못한 우리에게 자일리톨 광고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양치 후 자일리톨을 씹는다. 이처럼 광고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할 수도 낡은 패러다임을 반복할 수도 있다. 심성욱<언정대·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광고에서 좀 더 도전적인 여성들의 모습과 가정적인 남성의 모습이 그려져야 한다”며 “남녀 역할 변화에 있어서 광고가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고는 이제 앞으로 나아갈 여성상에 대한 제시를 해야 한다. 한국여성개발원의 자료에 의하면 사람들은 수동적인 여성이 등장하는 광고보단 진취적인 모습을 한 광고에 더 높은 호감을 나타냈다니 물건도 팔고 미디어로서의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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