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사 동인 3인 3색 동인 인터뷰①
학보사 동인 3인 3색 동인 인터뷰①
  • 김소희 기자
  • 승인 2007.05.14
  • 호수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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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제6기 임경록<신방·65> 동인

한양대학보 창간 48주년을 기념해 일선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세 명의 한대신문 동인을 만나 기자로서의 삶과 생각 그리고 그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들어봤다. 각자가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또 일선 기자로써 체험한 것이 다른 만큼 색깔이 다른 이야기들이 나왔다. <편집자주>

국내에서 기자로는 가장 오래 활동한 사람 중 하나라 자부하는 임경록 동인은 무려 35년 3개월 동안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연합뉴스 사회부장ㆍ논설위원ㆍ편집부 국장ㆍ뉴미디어 국장ㆍ인터넷 본부장ㆍ이사 대우 출판국장을 거쳐 얼마 전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임기를 마쳤다. 현재는 우리학교 안산배움터 겸임교수와 순천향대 초빙교수로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한대신문사 기자에서 일선 기자가 되기까지 

언제 어떠한 계기로 기자가 되기로 결심하셨는지 여쭤 봤다. “경영학과를 지원했다 떨어져서 재수를 했지. 다시 어디로 원서를 쓸까 했더니, 당시 친구가 신문학과가 새로 생겨 전망이 있는데다 나에게 어울린다고 추천해줬지.” 그러나 임 동인은 입학 후가 아닌 군대에 갔다 와서 비로소 구체적으로 기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내가 한대신문에 있을 때는 지금처럼 주간이 아니라 15일에 한 번 발간하는 순간이었지. 그래도 신문 만드는 게 만만하진 않았지. 편집장으로 있을 때 200호를 만들었던 기억이 나는군.”

임 동인은 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의로 신문을 만들었던 기억을 회상했다. “요즘엔 컴퓨터로 그래픽 작업을 해서 신문을 쉽게 만들어 내지만 당시엔 인쇄소에 가서 일일이 활자를 끼워 맞춰야 했지. 인쇄가 끝나고 신문을 가득 실은 트럭에 탈 곳이 없어서 신문 위에 앉아 새벽추위 속에서 서로 끌어안고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네.”

1972년에 정식기자가 됐다는 임 동인, “내가 막 언론계에 입문했을 당시만 해도 한양대 출신 기자가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많이 늘었지.” 현재 언론사 기자 뿐 아니라 아나운서·방송 PD·작가 등 전국에 분포한 한양언론인은 1천 200여명이 된다고 한다. 임 동인은 한양 언론인회 회장을 2기 연임한 바 있다.

임 동인은 대학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 3년간의 신문사 활동이 꿈의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대학신문사에서 기자 활동한 게 실제 기자가 돼서도 많은 도움이 됐지. 선배들이 무슨 일이 있으면 거의 나를 불러서 시켰고. 결국 같이 입사한 기자들이 다 나가고 나만 남았지.”

노장 기자로서 알려주고 싶은 것

임 동인은 “대학생은 기성세대를 따라하려고 하지 말고 대학생다운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대학 신문도 대학생다운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1980년 언론기관 통폐합 조치에 따라 기존의 군소통신을 없애고 만들어진 연합통신이 임 동인이 몸담았던 연합뉴스의 전신이다. 특파원 파견에 한계가 있는 중앙 일간지에게 연합뉴스는 외신을 모아 제공하는 뉴스의 총본산 역할을 한다고 한다. 연합뉴스는 마감이 없기 때문에 더 힘들다고 하는 임 동인의 말에 기자는 갸우뚱해졌다. “마감을 지켜야 하는 게 더 힘들지 않나요?”라고 물으니, “마감이 있으면 마감시간이 가까워 질 때만 스트레스를 받지만 마감이 없으면 항상 긴장감을 가지고 뉴스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답한다.

“기자의 요건은 글을 잘 쓰는 게 아니지. 상상력으로 글을 쓰려면 작가가 돼야 하고. 기자는 의구심을 가지고 현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해” 기자가 아니라 어떤 조직의 한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능력이 있고 책임감이 없는 것보다 능력이 없더라도 책임감 있는 사람이 더 낫다고 강조했다.

인생의 대선배로서 전하는 말

“우리학교 신방과 65학번이시죠? 57년생인 저희 부모님이 그 때 국민학생이네요.” 기자가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비로소 선배님과의 까마득한 나이차가 실감이 난다. 6·25때의 기억이 생생하다는 임 동인은 해방 전부터 70년대 팽팽하던 남북관계 속에서 일어났던 실미도 사건, 직접 현장에 있었다는 광주 5·18까지 역사 속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직접 우리 현대사를 통과해 살아오신 분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니 신기했다.

“책을 읽는 것이든 외국어 공부든 뭐든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게 있다면 절구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듯 해야 하는 거야. 침대 밑에 쌓인 먼지를 봐봐. 언제 이런 게 쌓였나 싶게 많지? 매일 아주 조금이라도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새 발전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임 동인은 대학은 목표를 세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기간이라며, 대학생 때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해야 앞으로 남은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당부했다. “지금 만날 수 있는 동기가 졸업하고 나서는 서로의 위치가 달라져서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

인터뷰를 통해 신문사 뿐 아니라 인생의 대선배로서 그동안 삶에서 체화하신 깨달음을 통한 교훈을 전해 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젊은이는 어르신에게 좋은 말씀을 들으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한다. 그 말씀은 약처럼 쓰지만 몸에는 좋은 법. 선배님과 작별의 악수를 하고 나서 쓴 약에서 느끼는 얼얼함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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