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보여 진다는 것
타인에게 보여 진다는 것
  • 김소희 기자
  • 승인 2007.03.18
  • 호수 12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매일 자신을 타인에게 노출하면서 산다. 얼굴, 패션과 같이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도 언행 하나하나에 자신의 성격과 과거를 드러내게 된다. 기자가 되어 매주 나가는 기사로 나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매번 신문을 볼 때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사를 봤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관심이 반갑고 고마웠다. 기사에 대해 평해주는 말이나 건의하는 말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누군가가 ‘확실히’ 내가 쓴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은 기쁨을 주었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듣는 사람이 없으면 공허한 울림이 되듯이 글 쓰는 이도 읽어 주는 이가 없다면 혼자만의 일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를 읽었다는 말이 마음 한켠에 슬그머니 불안감이 자리 잡게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널리 드러내고 싶음과 동시에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는 이중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다. 필자도 그런 심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기장 같이 가끔 생각의 단편들을 기록하는 블로그의 방문자 수가 적은 것도 싫지만 또 너무 많은 것도 꺼려졌다. 또 왠지 자신의 내밀한 영역을 지키고 싶어서 친한 사람들에게는 되도록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지 않기도 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은 작은 두려움을 준다. 그 두려움을 비유하자면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있지만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는 유리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다. 유명 작가들이 집에 박혀 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런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그래도 글로써 타인에게 보여 지는 것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여 지는 것보다 자신을 덜 노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글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꾸며 쓸 수도 있고 자기 검열을 통해서 자신을 어느 정도 보여줄 것인지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말은 한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여러 번 수정해서 신중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호의 인터뷰 보도 정정을 통해서 글의 맹점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쓴 글은 말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더 오래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맹점이었다. 특히 ‘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으로 한번 인쇄되면 돌이킬 수 없으며, 신문은 사실 전달을 사명으로 하기 때문에 기사의 토씨 하나에도 책임이 실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에 더하여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쓰는 글인 만큼 앞으로 그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