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장산곶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 김다빈 기자
  • 승인 2024.03.04
  • 호수 1578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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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빈
                                                               ▲ 김다빈<편집국장>

 

또 한 살 먹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매년 느끼는 감정이지만 매번 생경하다. 어릴 땐 그리도 안 가던 시간이 이상하게 스무 살이 된 이후부터는 더 빨리 흘러가는 기분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필자는 나이에 민감하다. 더 정확히는 ‘사회적 나이’에 민감한 것이다. 나름 세상살이 2n년차 경력직임에도 점점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불안감만 쌓인다. 이럴 바엔 차라리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이는 비단 필자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이십 대의 중반은 한창 나이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시기다. 최근 들어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가도 마음이 마냥 편치 않다. 누굴 만나 무얼 해도 결국 마지막은 미래에 대한 고민 이야기로 끝난다. 주변에는 벌써 취업에 성공해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향후 몇 년은 더 대학에 남아 하고 싶은 공부를 이어가겠단 친구도 있다. 10대에는 고만고만 비슷하게 흘러가던 시간이 20대가 되면서부터 극명히 갈린다. 그리고 그 시간은 마치 나에게만 불공평한 것 같다. 유독 내게 주어진 시간만 짧고, 내가 쓰는 시간만 허투루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이가 깡패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가진 것 이룬 것 하나 없어도 젊음을 무기 삼아 세상 앞에 당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나를 짓누르는 두 자리 숫자 앞에 작아지는 느낌이다.

내면은 그대로인 채 나이만 먹다 보니 사회가 내 나이에 부여하는 기대치들이 점점 버거워진다. 스무 살에 알았으면 좋았을 지식들, 저학년때 해봐야 하는 경험들, 대학생이 따야 하는 자격증, 이십 대가 지나기 전에 저축해야 할 자금... 미디어에는 뭐가 이리도 꼭, 반드시, 필수로, 제 나이에 맞게 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지. 이렇다보니 종종 내가 정말 내 나이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 의심만 늘어난다. 성찰이 과해지니 자책이 된다.

어제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이번 신입생들은 2005년생이래”라고 말해야 할 것을 실수로 “이번 신입생들은 스무 살이래”라고 뱉었다. 말하자마자 이상함을 느끼곤 신입생은 당연히 스무 살인 거 아니야? 하며 가볍게 웃어넘겼다. 필자의 눈에는 스무 살의 신입생들이 그만큼 까마득하게 어리다고 느껴져서, 그에 반해 필자는 상대적으로 너무 늙어버린 것 같다는 뜻에서 나온 가벼운 말실수였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지금의 내가 보는 스무 살은 부러우리만치 모든 가능성이 넘치듯 열려있는 나이인데, 정작 열아홉을 막 지나고 스무살이 되었던 시기의 나는 스스로를 더 이상 사회에서 나이로 용인될 수 없는 나이라 생각했다. 받침에 ㅅ이 들어가면 중반이라는 나이에 처음 접어들었을 땐 내가 정말 늙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것도 젊다. 어쩌면 필자는 그동안 계속해서 스스로를 ‘늦은 나이’라 단정하며 젊음을 부정해왔는지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내년은 또 온다. 노력 없이 얻은 젊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기어이 떠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가 늦었다 생각한 나이도 누군가에겐 기회의 나이다. 젊음과 늙음에는 명확한 기준선이 없고, 나이에 맞는 삶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은 각기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필자는 여전히 나이를 중시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에 하루아침에 이 부분에 대해 완전히 초연해질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이를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대신 한 두살 쯤 먹는 일은 아무렴 상관없을 만큼 단단해지고 싶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만큼의 세월을 축적하는 일이라, 어떤 성과나 업적을 이루지 않더라도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곧 경험이 되고 지혜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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